구체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막연하게 힘든 날이 있다. 왜 힘들어?라고 물으면 나조차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날. 이를테면 매일 지나가는 출근길 횡단보도를 건너며 문득 몇 년 뒤에도 내 삶의 반경이 이 한 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 나를 힘들게 하는 동료가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미워 보여서 밥도 같이 먹기 싫은 날 말이다. 이럴 날에는 퇴근하고 술을 마시거나 엽떡을 시키면 되지만 막연한 감정의 실체를 모를 때 두루뭉술한 처방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매일 크고 작은 힘듦과 마주하는 현대인들은 처방전 없이도 자신이 즉각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적어도 한두 개는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스스로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자신이 구체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아는 것은 엑셀만큼이나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유퀴즈를 보는데 행복을 오래 연구하신 서은국 교수님이 나오셨다. 일상에서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즐거움을 유발하는 압정을 발견해서 일상에 많이 깔아 놓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신 말이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았다.
얼핏 보면 '행복'과 '압정'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 그런데 어쩐지 행복 버튼이라는 말보다 행복 압정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쉽게 누르고 눌러지는 버튼 대신 뾰족하고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우리에게 행복 압정이 있다면 도토리를 잔뜩 저장해 둔 다람쥐처럼, 무기를 장전해 둔 전사처럼 위기 경보가 울리면 행복을 위한 트랩을 설치해 두고 언제든 행복의 덫에 빠져버릴 수 있다.
이 어마무시한 행복 압정은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이다. 오늘도 나와 같이 자신의 의지로 들어온 트랙 안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어서 뱅뱅 돌고만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모아둔 행복 압정을 공유한다.
1. 오늘은 혼자 밥 먹겠다고 하고 근처에 가장 가까운 잠봉뵈르 집 찾기. 빵을 테이크아웃해서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 오늘의 커피와 함께 먹기
2. 주말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반쯤 열기. 따뜻한 치아바타에 올리브유를 찍어 먹으며 아침의 풍경 보기
3. 좋아하는 앨범의 플레이리스트를 랜덤 재생하며 북촌 골목 걷기. 한 번도 안 가본 골목길로 들어서 끌리는 가게 들어가 보기
모두가 자신만의 행복 압정으로 구체적으로 행복한 하루를 만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