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잘 보내고 있나요?
얼마 전 <나혼자 산다>에서 방영된 전현무의 생일편이 꽤 화제가 되었다.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카톡 메시지를 기다리며 쓸쓸해하는 모습에 공감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댓글에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는 사람도 더러 있고, 생일에는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조용한 곳에 가는 리추얼을 만들었다는 사람도 있다.
'생일'을 떠올리면 몇 가지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롯데리아에 친구들을 다 불러 놓고 햄버거와 케이크를 함께 먹던 장면, 학창 시절 친구들이 빈 도서실을 꾸며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줬던 장면, 대학시절 남자친구와 돈을 모아 꽤 비싼 레스토랑에 갔던 장면. 그런데 근 5년 동안은 크게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이 없다. "너 작년 생일에 뭐 했어?"라는 질문을 들으면 한 삼십 초쯤 고민하다가 "음.. 아마 맛있는 거 먹으러 갔을걸?"이라고 대답하겠지.
그러고 보면 생일은 참 이상한 날이다. 나이가 몇인데 생일을 챙겨-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온종일 카톡을 기웃기웃하게 되는 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바람을 맞기도 하고 저절로 멀어진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서 챙김을 받기도 하는 날.
그럴 때면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참으로 복잡하게 움직여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의 마음이므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테다.
서로 엇비슷했던 이십 대를 지나 삼사십 대가 되면 친구 간에도 서서히 격차가 생겨 오래된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결국 비슷한 환경,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에는 이상하게 반발하고 싶어지는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내 옛 인연들을 지키고자, 그들과 닿아있고자 노력한다. 그들이 가끔은 바쁜 현실에 치여 내 생일쯤은 잊고 넘어갈지라도 괜찮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나이가 들수록 더 귀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절 인연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유일하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이 관계를 구하고 싶어 진다.
생일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는 것이 좋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롯데리아처럼 한 곳에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에 친구들을 소집하기에는 이제 모두 바빠졌다는 것이다. 또 파인 다이닝에서 값비싼 한 끼를 먹는다고 해도 대학시절 내가 먹었던 스테이크의 감동을 넘기는 힘들 것이며 내년, 내후년이 되면 내가 어디에 갔는지도 흐릿해질 것이다.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물론 누군가의 축하가 있다면 더 기쁘겠지만, 자정이 넘어 카톡이 쌓인 개수와 상관없이 생일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열렬히 찾고 싶다. 지나간 인연의 무상함을 탓하지도, 넓은 인맥을 부러워하지도, 내가 준 선물보다 성의 없는 선물을 받아 속상해하지도 않고 딱 하루치만큼의 충만한 즐거움과 설렘을 느낄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12시가 넘으면 또다시 찾아오는 보통의 날들에 좀 더 가뿐히 착지할 수 있다면.
이미 생일의 유효기간은 끝났지만 촛불의 힘을 빌려 올해 몇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
하루를 하루의 일로 끝내기를,
평범한 날들에 애틋한 마음을 갖기를,
타인의 행동에 너무 크게 동요하지 않기를,
누군가를 부러워할 시간에 나를 더 탐색하기를,
조바심을 갖지 않고 나를 안아주기를,
더 진실하고 명랑한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