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학교 도전기 (2)
합격 해버렸다.
해외 학교 초빙교사 모집 공문을 보고 일주일 정도 고민 후 지원을 결심했고, 꼬박 4일 동안 지원 서류를 준비했다. 정확히는 지원 서류와 대면 수업 동영상이었지만, 수업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데는 서류만큼 큰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니어팟을 활용해 생태계 복습 퀴즈 수업을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예고 없이 촬영했고 그날 바로 무료 어플로 편집했을 뿐이었다.
서류를 작성할 때는 쓸 게 많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니 모두 필요한 질문이었다.
너는 교사로서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 어떤 수업을 해왔어? 우리 학교는 어떤 특징을 가졌어? 우리 학교가 너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 것 같아? 여기 오면 어떤 교육을 펼칠 거야? 너의 장점은 뭐야? 너의 특기는 뭐야? 등
지원자라면 당연히 고민해야 하는 물음이었고, 이에 답을 하는 과정 자체가 해외 교사로의 첫걸음이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했다. 압박감 없이 즐겼다. 현재 학교 생활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여기 아니면 안 돼.‘하는 절실함은 없었다.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적당한 긴장감이 권태를 깨 주었다.
서류 합격을 하고 나서 약 2주 후 주말 아침, 한국에서 면접이 있었다. 서류 기반 면접이기에 내가 작성했던 서류를 다시 보고 지원할 학교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했다. 혹시 몰라 ib교육과정도 유튜브로 공부했지만 면접관은 이것을 질문하진 않았다. 면접 대기실에서 지원자를 세어보니 서류에서 2 배수를 뽑은 것 같았다. 긴장이 크게 되지 않았다. 불합격해도 괜찮은 마음이었다. 오히려 합격을 한다면 더 큰 고민이 시작될 터였다. 신변을 정리하고 2년을 연고 없는 해외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산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불합격한다면 서운하겠지만, 깨끗하게 한국에서의 2025년을 준비하면 되었다.
면접은 잘 본 것 같았다. 체감상 20분 이상으로 느껴졌지만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 터무니없어서 헛웃음이 날 정도의 당황스러운 질문들도 있었지만, 압박 면접이라 생각하고 챗지피티처럼 답했다. 면접을 마치니 드디어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다. 한 달 동안 스스로 찬 족쇄가 풀어지는 느낌. 이제 고민은 그들의 몫이었다.
면접 후 5일 뒤에 최종 합격 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기뻤지만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합격은 했지만 정말 갈지 말지는 나에게 결정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 카페에는 2차, 3차 지원자를 모집하는 해외학교의 공고들이 나고 있었다. 아마 적합자를 찾지 못했거나, 최종 합격자가 가지 않기로 해서일 것이었다. 내가 지원하지 않았던 국가에서 내 교과로 지원자를 재모집하는 것을 보니 ‘내가 저곳을 지원했다면 저 학교를 갈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이 무렵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포함한 미디어, 책들은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었다.
어려운 길을 택해라. -릴케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 이연
그곳을 갔을 때와, 가지 않았을 때를 모두 상상했다. 가보고 후회하는 것이 가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나은 길이라 생각했고 결국 난 가기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방콕에서 새 학기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장소를 가고 안 하던 일을 하면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벌어졌고 대부분 좋은 일이었다.
지금까지 도전 중 가장 큰 도전이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게다가 나는 혼자 있으면 외로움보다 충전됨을 느끼는 내향인이니까. 적응력도 뛰어나니까!
지금 살고 있는 이곳도 2년 전 아무 연고 없이 이사 와서 동네 친구를 만들어 살고 있으니까. 어디서든 지금처럼 헬스 하고, 러닝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즐기다 보면 결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걱정 끝, 설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