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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엘 Dec 23. 2020

언어 습득과 상호주의

행동주의? 생득 주의? 상호주의?



 행동주의는 행동주의 심리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비롯되었다. 행동주의 언어 주의자들은 제2언어 습득은 모국어가 이미 과거의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언어 습관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경우에서 과제는 옛날의 습관을 버리고 새 습관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제2언어 학습자는 모어에서의 습관을 지닌 채 새로운 언어 학습을 시작해야 하는데 모어 사용습관은 제2언어 습관 형성을 방해한다고 본다(대조 분석 가설, Lado 1964). 이러한 행동주의는 제2언어 습득의 어려움은 모국어와 목표어의 차이에서만 기인하지는 않으며 학습자 변인, 학습 환경의 차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을 동반한다.



 생득 주의는 아이들은 제2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고 그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해당 언어에 노출이 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법 구조를 습득하게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생득 주의에서는 제2언어 습득을 관찰한 결과, 학습자는 자신이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재화하여 사용한다고 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언어들을 스스로 분석하여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 습득 능력은 타고난 것이다’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설계가 된 크라센(Krashen)의 입력 가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수업만으로 이루기는 어려우며, 보편 문법 내지는 선험적 지식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보편 문법이란 타고난 지식을 의미한다. 즉 어느 한 언어에 국한되지 않고 어떤 언어에 놓이더라도 그 언어를 잘 습득할 수 있게 만드는 지식이다. 그러나 보편 문법의 존재와 그것이 언어 습득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상호주의는 아동의 언어 능력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본다. 먼저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 사물을 통해서 개념을 먼저 형성하고 그러고 나서 언어를 발달시킨다는 피아제(Piaget)의 이론에 근거한다. 또한 학습자, 즉 아동은 자기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지만 그 능력에서 조금 벗어난 것들 혹은 약간 어려운 것들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서 점차 능력의 범위를 넓혀나간다는 비고츠키(Vygotsky)의 이론이 이에 해당한다. 피아제는 사물과의 상호작용, 비고츠키는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이 내용을 정립한 것이 수정적 상호작용이다. 여기서 수정이라는 것은 학습자와 대화할 때 학습자의 발화를 수정해준다는 의미이다. 또는 학습자에게 주어진 입력을 수정한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을 의미 협상이라고 한다. 의미 협상은 대화를 할 때 서로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조금씩 양보해 가면서 나중에는 합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상호주의는 행동주의의 생각과 생득 주의의 생각을 모두 기본적으로 받아들이고 즉, 환경의 중요성과 타고난 능력의 중요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상호작용이 공존해야지만 온전하게 제2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가까운 예시로 나의 이야기를 먼저 풀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심한 말더듬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포도’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고 싶은데 머릿속에서만 그 단어가 맴돌고 입 밖으로는 도저히 나오지 않는 것이다. 힘들게 애써서 단어를 내뱉어도 "포포포포도도도도도도도"라고 나왔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이런 증상이 나오면 창피하고 답답했다. 원인을 굳이 따져보면 아버지가 동일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돼서야 그것이 일종의 언어장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약 30년 전의 내가 살던 환경의 어른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것을 치료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나의 성격이 급해서, 내 성격이 문제라고 했다. 아버지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말을 더듬었는데 그가 흥분을 할 때면 그 증상은 더욱 심해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전히 불특정한 상황에서 단어가 막히는 증상은 있다. 그럴 때에는 머릿속에서 차분히 생각한다. 대처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실 내가 말더듬을 가지고 있어서 말하고 싶은 단어를 지금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다"라고 표현을 한다. 그리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포도’를 내뱉어본다. 지금은 어릴 때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포도’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면 그와 비슷한 ‘샤인 머스캣’을 떠올리고 발화해보기도 한다. 포도에 관한 대화 중 샤인 머스캣을 말했다고 해서 대화가 망가진 일은 거의 없었다.



 위 이야기는 제2언어가 아닌 모국어에 해당하므로 동떨어진 예시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다. 말더듬을 유전적으로 타고났는지 아버지에게서 후천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급한 내 성격이 원인이라고 치부하는 가정환경보다는 나의 말을 차분히 기다리고 귀 기울여 주는 사회적 환경에서 나의 전달력과 어휘력은 매우 향상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이것은 영어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놈의 말더듬은 영어를 할 때도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나 나 같은 ‘외국인’이 영어를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한 없이 관대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실수를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덜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캐나다인과 일본식 식당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한 날이 다가왔고 나는 그에게 우리 오늘 일식당에 가는 거 맞냐고 확인을 하고 싶었다. "Do you remember about..."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입에서 도저히 ‘sushi restaurant’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About what? Going to Sushi restaurant? Of course..."하며 답을 이어나갔다. 그는 나의 발화를 수정하여 이해했고 거기에 덧붙여 답을 했으며 나의 의도에 따라 우리의 약속이 아직 유효한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경험한 결과 나의 언어 습득 수준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옛 아동 시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이것들에 대해 자각을 하여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제2언어 습득에 있어 상호작용 이론에 무게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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