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차를 찐하게 탔다. 밀가루 음식을 거북하게 처먹고 찐한 매실차를 마시는 게 과연 효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릴때부터 마셔왔으니 그런갑다하며 마신다. 사실 난 매실차의 소화 효능을 믿지 않는다. 이따위 설탕물이 무슨 놈의 효능이라고. 왓더퍽 민간요법 다 꺼지라고 해라. 그럼에도 집에 매실청이 떨어진 적이 없다. 김치를 즐겨 먹지도 않는데 냉장고엔 늘 김장김치가 자리하고 있다. 매실청뿐만이 아니다. 오미자청, 고추청, 무슨 청 무슨 청..., 손수 빻아 납작하게 눌러서 필요한 만큼 쏙 떼어 쓸 수 있는 마늘, 겨울 내내 무한리필 되고 있는 귤, 밥솥도 없고 쌀도 없는데 밥반찬용 김, 바싹 말려서 구수한 풍미를 풍기는 옥수수알뭉탱이, 국물용 말린 다시다... 가끔 어르신들께서 오셔서 구호물품처럼 건네주신 사랑의 흔적이 주방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무슨 놈의 한겨울 실내온도가 21도라니. 보일러 수도관은 역류하고, 세탁기 수도관은 동파되어 아랫집에 누수 발생하고, 빼꼼 내놓은 눈알까지 시려서 외출은 엄두도 못 내야 제맛인데. 난방을 하지도 않았는데 21도라니 지구가 망하긴 망하려나보다. 전에 살던 집은 종이로 지어서 난방을 틀지 않으면 5도까지 내려갔는데도 옷을 껴입고 땀 흘리며 실내운동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땐 미쳤던 게 분명하다. 그 정도는 미쳐야 복근이 주어지나 보다. 21도에도 손가락하나 까딱 않고 침대에 누워 달콤함을 즐기는 지금이 제정신인거지 암.
한겨울에 떠났던 러시아와 삿포로 여행이 떠올랐다. 당시 홋카이도를 너무 짧게 다녀왔던 것이 지금에서야 아쉬워서 홋카이도로 즉흥여행을 갈까 한 십분 생각했다. 그리곤 금방 잊었다. 아마 러시아도 이렇게 즉흥적으로 다녀왔던 것 같다. 러시아여행이 벌써 4년 전이다. 요새는 뭐만 하면 10년, 20년 전은 기본이다. 지금 나오는 건즈앤로지스 노래도 좋아한 지 20년이 넘었다. 어휴 징글징글해. 30년, 40년도 금방이겠다. 그때까지 살맘은 요만큼도 없는데. 늘 얘기하지만 오래 살맘은 손톱만큼도 없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안 죽고 계속 잘 살아 있다. 원래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장수한다더라. 그럼 이제 절대 말하지 말아야겠다.
쓰다 만 약 30개의 글을 모두 정리했다. 이놈의 브런치에는 일괄삭제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제목을 클릭해서 들어가서 삭제를 눌렀다. 참 하나같이 그지 같은 글들만 모아져 있어서 그것도 웃겼다. 맞네, 글 꼬락서니가 이래서 못 올렸었지. 일단 쓰고 발행하라는 잔소리는 한 천 번쯤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쉬우면 당신이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정리하면서 옷과 물건들도 좀 버리고, 멀쩡한 몇 개는 당근에 올렸다. 당근에 올리는 게 너무너무너무 귀찮아서 거의 6개월을 질질 끌었다. 하기 싫은 일을 먼저 해치워야 해야 할 일에 손이 가는데 이제서야 해치웠다. 해야 할 일이 있긴 있는 모냥이다.
아쉬탕가 마이솔을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인도에 다녀와야겠다고 하셔서 수업이 없어졌다. 할 수 없이 요가원을 옮겨서 새 선생님과 마이솔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잘 적응해서 수련하던 중, 이번엔 새 선생님께서 본인이 마이솔 수업을 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셨다면서 수업을 곧 닫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 요가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갑자기 인도로 떠나시는 것도, 수업을 닫으시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다 있겠지. 순례길은 한국 돌아와서의 일상이 진짜 순례라더니 요가수련도 일상이 그냥 수련인가 보다. 수업이 또 없어지면 내 마이솔 수련은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이제 마이솔은 그만하고 하타를 해야하나.
타카코는 매년 새해에 엽서를 보낸다. 올해는 내가 보내볼까 했는데 맘에 드는 엽서를 찾지 못했다는 핑계로 역시나 보내지 않았다. 늘 주기만 하는 타카코. 수시로 바뀌는 내 주소도 한 번의 착오 없이 착착 잘 챙겨서 매년 새해에 우편함을 열게 만든다. 모바일쿠폰 선물이 남용되는 이시대에 이런 아날로그 선물은 정말 남다르다. 아마 평생 간직하며 두고두고 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