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 Feb 06. 2022

회피하는 인간 -솔직담백, 달콤쌉싸름한 by 메이지

사서 한 책읽기 #003

이 책을 보고 생각났다. 동생과 독립서점을 갔던 날 동생이 내게 했던 말. ‘여기에 누나(책) 같은 책 많이 있네!’ 독립 서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얇고, 크기도 지금껏 흔히 보지 못한 판형에 놀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얇거나 작지 않다. 메이지 작가님의 ‘회피하는 인간 -솔직담백, 달콤쌉싸름한’ 또한 그렇다.


이 책은 작가님의 (나에게) 첫 책 ‘안녕, 진저브레드맨’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의 이야기에서 살짝 가족 이야기로 확장된 글이 첫 책에서 그림자로 가리어진 부분이 조금은 양지로 드러낸 느낌이 든달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당연히 이 책이 두 번째 책이라고 단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이 아름다운 기억만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다. 꺼릴 수도 있었던 아픈 할머니의 이야기를 깊게 다루고, 이루지 못한 조향사의 꿈과 아직 구매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시계에 대한 글이 좋았다. 끝이 나지 않은 이야기는 아직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할머니가 좀 더 오래 건강하게 머무시는 이야기, 조향사는 되지 못했지만 언젠가 방산시장을 찾을 이야기, 작가님의 손목에서 함께 늙어갈 시계에 관한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진다.


회피하는 인간은 에스프레소 위에 생크림이 듬뿍 올려져 단 맛, 쓴 맛, 고소한 맛까지 느낄 수는 에스프레소 콘 파냐 같다. 책은 다 읽었으니 내일은 책 대신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콘 파냐를 마셔봐야겠다.





p.28

(…) 우리가 그때의 할머니처럼 우산이 되어 드릴 수 없다면, 이제는 함께 빗속에서 춤을 추려한다. 가족을 향한 할머니의 진심이 무엇인지 의심하며 쓸데없는 상상으로 괴로워하기에는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나 짧다. 이제는 제대로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울 때가 되었다.


p.57

고된 하루를 보내고 댕댕이와 함께 누운 밤, 벌써 깨끗하고 따스한 흰 꽃입들이 그립다. (…) 노지 월동을 견뎌내어 단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마가렛의 강인함을 닮고 싶다. 어쩌면 내일 퇴근길에 마가렛 화분을 데려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p.68

어디에 가닿을지 알 수 없는 어느 밤바다를 홀로 유영하고 있을 그녀가 잠시나마 아카시아 꽃잎이 흩날리는 이밤, 행복했던 우리를 기억해 주길.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의 담은 캐리어 by 이레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