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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Feb 15. 2019

드라마 기획PD가 되었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드는 것도 모르고



"어제 스카이캐슬 봤어?"

"나 요새 현빈 나오는 드라마 보는데..."

"송혜교 드라마에서 입고 나온 원피스가 너무 예쁘더라."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는 테이블에서 빠지지 않는 화두가 있다.

드라마





물론 다양한 이유들로 드라마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 있겠지만, 드라마만큼 세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는 드물다. 딱히 찾아 보지 않더라도 리모컨만 돌리면 오만군데 채널에서 드라마는 늘 온에어 중이고, 넷플릭스부터 웨이브까지 다양한 OTT서비스에서도 드라마는 늘 존재한다.


분명 출생의 비밀이라든지, 불륜 막장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는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욕하면서 챙겨보는 것의 재미를 알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장르의 다변화같은 점진적인 발전도 이뤄내고 있다. 콘텐츠 채널이 변화하면서 공중파의 죽음과 함께 드라마도 죽을 것인가 잠시 생각했었지만, 드라마는 건재하다. 


드라마는 죽을 수가 없다. 내가 어디서 조선시대의 중전도 되어 보고, 1980년대를 살았던 청춘이 되거나 고작 6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보겠는가. (이건 있을 수도 있겠는데) 알고 보니 재벌이었던 실장님과의 결혼으로 재벌집 며느리가 되어 볼 수도 있고.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대부분이 연애하느라 바쁘지만) 그 어렵다는 의사나 판사도 되어보고 왠지 로망이 샘솟는 광고회사에도 다녀보고 해외에서도 살아볼 수 있고! 결정적으로 예쁜 얼굴과 뛰어난 몸매로 잘생기고 몸 좋은 남자와의 멜로도 해본다. 물론 내가 아니지만 그래도 간접경험이란 걸 해본다. 드라마 덕분에!  



그러니 말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이란 말인가.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그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무언가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은가.

적어도 내 머릿속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드라마에 발을 디뎠다.





그렇다면 드라마 연출도 있고 작가도 있는데, 나는 왜 '기획'이었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하면서도 순수문학의 길을 꿈꾸지는 않았다. 정확한 표현은 '못했다.'겠지만...

나는 마음껏 자유를 염탐하는 동기들과 다르게 수업도 빠지지 않고 과제를 참 열심히 해가는 학생이었다. 다른 의미로 남달랐다. 스스로도 생각했다. 문창과 학생 같지가 않다. 문학하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특별한 통찰력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았다. 뛰어난 문장력도 없었고 매력적인 달변가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성공한 문학가들은 보통 저 세가지를 갖고 있었는데 어찌된게 단 하나도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스스로 객관화는 되는 편이어서 대신 학점에 몰두했다. 

수업을 빠지지 않고 성실히 과제를 했고 시험도 최선을 다해 보았다. 그래서 학점이 좋았고 장학금도 받았다. 뭐 학창시절의 자랑은 이정도가 유일하다. 그런 사람이다 내가.



사실, 학점이 좋지 않아도 자신만의 글을 쓰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잘 모르는 내가봐도 재능이란게 반짝거리는 글이 있었다. 그런 글을 흠모했으나 나의 글은 평범했다. 밋밋하기 그지 없는 나의 글이 늘 불만이었고 열등감에 불타올랐다.

한번도 교수님께 크게 혼난 적이 없다. 그정도로 평범하고 무난한 학생이었다. 한마디로 존재감이 없었다.

졸업 후, 오랜만에 학교에 가 교수님을 뵙고 왔다는 동기의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교수님들은 날 기억하실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실까봐 지금껏 인사 한 번 간 적이 없다. 

이것이 내가 기획자가 된 계기라는 걸 설명하고 싶었는데 역시 이상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말했듯, 나는 통찰력도, 문장력도 갖고 있지 않으며 달변가가 아니다. 흑흑.



아무튼 나는 글을 써서 돈 벌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드라마 작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고 

그럼 뭘 하면서 살지?라는 숙제를 안아들고 졸업반이 되는 것이 두려워 휴학했다. 

이때 '기획'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러 대학교의 학생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만들어가는 기획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기획은 A to Z 였다. 어찌 보면 핵심이기도, 또 변두리 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봤지만 해보니까 꽤 적성에 맞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익숙해진 콘텐츠의 구조화를 적용할 일이 많았다.

휴학기간 동안 막연하게, 기획을 하면서 살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뭘 기획해볼까?

원래 드라마를 좋아했으나 휴학하고 워낙 시간이 남아돌았던 나는 드라마에 미친 사람같이 살았다. 한드, 일드, 미드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봤다.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고 드라마만 보던 덕후 한 마리는 특히 노희경 작가님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사랑했고,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특히 현빈과 송혜교의 비쥬얼은...그야말로 드라마에 대한 로망 지수를 최고조로 만든 결정타였다! 

(혹시해서 말하는데 말도 안되는 로망이다.)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다 이런 줄 알았지 (사진 : kbs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


 

드디어, 졸업을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선명해졌다.



무조건 드라마 제작사에 취업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한 달 정도를 놀았는데 전 직장의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내가 즐겁게 봤던 드라마를 두 개나 제작한 회사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슨 신의 계시 같았다.

이러려고 그 드라마 봤나 봐!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려고!

내 자리가 분명해 보였다! 워낙 재밌게 본 드라마라 회사에서 요구한 과제물도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었고

자신 있었다. 자신감의 결과는? 이력서와 과제 제출, 두 번의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존재감 없던 문예창작과의 모범이은 첫 서류 지원과 첫 면접으로 첫 직장에 취업을 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모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드라마 제작사의 기획 PD가 되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임을 그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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