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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5. 2023

이름이 뭐길래

몰리스 게임

"선고하겠습니다. 기립하세요. 관련정보에 의거, 본 법정은 검찰측의 구형에 부동의합니다.

본 법정은 월가와 침 뱉으면 닿을 거리입니다. 직접 뱉어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그치들이 오늘 점심까지 저지른 범죄들이 피고인의 혐의보다 훨씬 중할 겁니다. 몰리 블롬씨를 구금한다고 하여 정의가 실현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몰리'는 전직 스키선수 출신의 로스쿨 입학을 보류한 당차고 지적인 여성이다.

잠시 부동산 사업가의 비서로 일하면서 접하게 된 상류계층의 포커판을 사업으로 확장시켜 큰 성공을 거두지만 FBI의 수사대상에 올라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변호사는 그녀의 컴퓨터 하드 드라이버를 요구하는데 몰리는 거부한다.

"애인들한테 온 문자 따위는 상관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할 문자가 있어요. 직장과 가족을 잃을 문자도 있다고요. 그 문자들이 밖으로 공개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쳐요."


그런데 정작 검찰이 원하는 건 그녀의 하드 드라이버다. 고객들의 내밀한 사생활과 개인 정보가 담긴 이메일, 문자인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러시아 마피아 고객과 엮어 조직 범죄로 모는 것도, 재산부터 몰수하고 그 재산에 세금을 물리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결국은 이것 때문이다.


판결을 앞두고 변호사는 제안을 받는다.

"새 제안이 왔어요. 하드 드라이버를 넘기는 거예요.... 그 댓가로 돈을 돌려주겠답니다. 이자까지 해서 전부, 500만 달러가 넘죠."

"애초에 그래서 몰수한거예요? 그걸 제안하려고..."

"네. 어차피 재판에 가도 하드는 증거로 넘겨야 해요."

"자발적으로 넘기는 것과 다른 거잖아요"

"지금 넘겨도 자발적인 건 아니죠. 안넘기면 감옥이니까. 검찰의 구형은 42개월이에요."

"넘기라는 거죠?"

"감옥 안가려면 그래야죠.'

"내용물을 봤잖아요..... 경력이 망가지고 가족들, 아내, 삶..."

"부자는 감옥에 가면 돈을 뿌리죠. 변호사가 다 알아서 사방에 돈을 뿌려요. 당신은 없잖아요"

"애를 괜히 낳았다고 하는 아빠의 문자를 자식들이 읽게 돼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어디 있는데요? 친구들 어디가고 왜 혼자 있어요? 한 명이라도 와서 이래야죠 '내 인생 구해주려고 애쓰는 거 알아요' '뭘 도와줄까요? ' "샌드위치라도 사 올까요? ' 다 어디 있어요? 당신은 비밀을 지켜주고 있는데 다들 어디 있죠? 자기 돈 500만 달러를 포기하고 감옥까지 불사하는데 다들 어디 갔어요?"


"내가 지키려는 건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내 이름이에요. 난 도박 중독을 이용했어요. 그 중에는 목을 맸거나 감옥에 있지만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에요.... 난 증조 할머니 이름을 물려받았어요. 몰리 두빈 블룸, 그게 내 이름이죠."

"당신 이름은 아무도 신경 안써요"

"난 써요. 왜냐하면..... 내게 남은 건 이름뿐이니까요. 내 이름이니까. 평생 다른 이름은 없을테니까..... 재판까지 가서 혐의를 인정할거에요. 거래도 없고 교환도 없이.... "

"정말 괜찮겠어요?"

"네"

몰리는 그렇게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변호사가 '좋은 분'이라서 운이 좋다고 했던 판사는 월가의 범죄를 빗대며 검찰의 구형에 동의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다.

실화가 바탕이 아니었다면 서운할 뻔 했다.


몰리가 모든 걸 버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이름의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에는 '몰리'보다 유명한 '줄리'가 있다. 대한민국 영부인의 이름은 김건희다. 과거에는 김명신이었다. 윤석열의 멘토는 쉽게 잊혀지지않은 이병철이었는데 이천공으로 개명했다. 한때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렸던 최서원은 최필녀, 최순실 2개의 이름이 더 있다. 무릇 이 나라에서 유명해지고 출세하려면 개명을 고려해봐야 할 것만 같다.

정순신, 최초의 검사출신 국수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사람의 이름이다. 순신, 흔한 이름이 아니다. 함부로 쓰지 말았으면 하는 위대한 선조의 이름이기도 하다. 외람될지 모르지만 부디 개명해줬으면 좋겠다.


영화 <몰리스 게임>에서 놓쳐선 안되는 명대사가 있다. 몰리가 도박장을 개설하며 합법적으로 운영하려고 자문을 구하던 또다른 변호사가 하던 말이다.

 '법을 어기고 있을 때는 법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When breaking the law, don't break the law)


학폭 방지를 위해선 교장도 검사를 임명하면 된다는 시절농담이 오가는 세상,

검찰 캐비넷이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가 되고 법을 어긴 자가 법으로 다스리는 작금의 세태에 그나마 숨통을 틔려고 이 영화를 봤다.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등사기 꺼진 영화관처럼 차갑고 어둡다. 윤석열이 집권하는 동안 대법관 총 14명 중 13명이 교체된다. 운좋게 최고 법정에서 '좋은 분'이 걸릴 확률은 훨씬 희박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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