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렇게 스무 살이 되나?

by 해초

2023. 12. 31.

열아홉의 끝에서

스물을 바라보며




올해는 더욱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직 졸업도 안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이 이렇게 마무리된다는 것도 거짓말 같다. 아주 길고 길었던, 그치만 순식간에 지나간 이 3년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을까. 앞으로의 삶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미 나에게 정말 많은 체크 포인트를 남기고 갔을지도 모른다.


이번 해는 필연적임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모두가 듣기만 하면 발발 기는 ‘고삼’이 된 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고삼이 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중학생 때는 그 시기가 매우 멀게 느껴졌다. 한 10년쯤 지나면 나도 고삼이란 걸 해 보겠지? 라는, 자신은 없지만 두려움도 없던 아주 어리고 명랑했던 시절. 고삼이란 것의 위협을 느낀 건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 되어서였다. 늦었던 건지도 모른다. 선생님들이 너네 곧 고삼 될 건데 정신 좀 차리라고 몇 번을 언질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었던 나이였다.


고백하자면 나의 고삼은 그렇게 악착같지 못했다. 쓰러질 정도로 공부했나? 라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겠다. 일 년 내내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게 올바른 방법이었는지 보람찬 양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열정은 있었다. 고삼이 되기 직전 겨울방학, 존경하던 사람이 말했던 ‘자거나 놀더라도 스터디 카페에 가서 해라’라는 조언을 보고 그걸 일 년 동안 상기시켰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더라도 스터디카페에 열심히 갔다. “열심히”는 했지만 “잘” 했는지는 미지수인 거다.


모든 게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노력의 정도까지도 운명이라고 치부할까? 이 정도로 공부해서 이 정도의 성적을 낸 것도 결국엔 나의 노력 탓이 아니라 운명 탓인 걸까? 그것까지 운명이라 말하기엔 내가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이렇게까지 해도 안 된 건 뭐지 싶으면 결국 정당하고 공정한 이유도 없는 것 같고. 이 세상이 공평하냐 불공평하냐 물으면 여지없이 불공평으로 쏠리는 게 사람의 심리가 아닐까 싶다.


결과는 과정을 가린다. 결과만 보면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이 소식이 퍼지면 곧 주변의 축하를 받는다. 그런데 누군가는 갑자기 보지도 않은 나의 노력까지 평가하며 네가 그렇게 고생했으니 당연히 합격할 만하다고 한다(물론 이렇게 말해 주면 감사하다). 나보다 열심히 노력했어도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는 사람이 있고, 나보다 편하게 살았어도 그 처지에 과분한 대학을 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생긴 대학교의 서열에 미쳐 있는 대한민국은 어쨌든 OO대 간 거 아니야? 하며 합격증을 쥔 친구들에게 과정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 허황된 만족감에 취하게 만든다. 그렇게 대학 서열이 굳게 유지되는 것 같다.


사실 결과는 진짜 운인 것 같은데. 선생님들이 이 말을 할 땐 정말 듣기 싫었지만 어쨌든 운이 크게 작용하는데. 3년 동안의 수고를 고작 대학교 이름으로 평가받는다는 게 어이가 없다. 3년 동안 나도 열심히 살았던 편이지만, 전국에 나만큼 열심히 산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솔직히 누군가 나에게 너 여기 왜 붙었어?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입사관이 아닌 이상 아무도 그걸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내신 성적이 입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내신이 노력에 비례한다고는 증명될 수 없다. 대학 입시가 이렇게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스무 살은 더욱 혼란스럽다. 스무 살은 훨씬 더 갈팡질팡이다. 어느 누구도 아닌 이 ‘사회’가 나에게 정해 준, 성인으로서의 첫 번째 위치에서 발을 떼기 때문이다. 누군가 어딘가에 속해 있는 것에 자신만만해 한다면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이 아닐지 의심스럽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늘 소속감을 느끼려 한다고 배웠다. 내가 정녕 이 위치가 맞나? 끊임없이 되뇌이며 궁금할 것 같다. 새로운 집단이 어떨지 지금은 설레고 궁금하지만, 곧 찾아올 혼란과 고뇌도 준비해야 할 것만 같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스물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스물이니까.


하루가 달라져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스물이 되면 뭐가 달라지길래 온 주변이 세상이 난리인지. 서울로 올라가 사회로 첫발을 떼는 2월의 내가 지금과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사람 대하는 법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살 건지도 하나도 모르겠다. 스무 살이 되면 이런 복잡한 질문들에 해답이 생길 거라는 확신도 할 수 없다. 한층 성숙해지고 대학에 붙어서 스물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지나 스물이 되는 것이다. 열하나, 열넷, 열여덟과 다를 바 없이. 사회가 나에게 준 역할과 지위가 달라져서 특별하게 보이는 거지, 십의 자리가 바뀌어서 특별한 거라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살다 보니 벌써 스물이 되었다. 안 올 것처럼 멀게 보이던 스물이 차례에 맞게 나에게도 찾아온 것뿐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이 스무 살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다. 이번 겨울에는 20이라는 숫자가 설레는 맘으로 다가올 것 같다. 날이 따뜻해지기 전까지는 사회가 바꾸어 준 지위를 명패처럼 달고 이리 저리 많이도 다녀 보고 새로운 술도 마셔 보고 꿈만 꿔 봤던 일들을 마구 해낼 것이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면 스무 살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해 보고 싶다. 스무 살이니까 배울 수 있는 것들, 배워야 하는 것들이 한가득 기다리고 있겠지. 고등학교에 들어 오고 나서 보낸 첫 일 년처럼, 대학교에 가서도 내 손이 닿는 곳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싶다. 내가 기대하는 스물은 이때까지 품고 살아 온 로망들을 실현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스물이 가진 게 열정과 낭만밖에 더 있을까. 그냥 내 앞에 주어진 모든 것에 진심을 담아내고 싶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운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내가 이 대학교에 붙은 것, 이런 스물을 맞게 되는 것 역시 운명일지도 모른다. 스물의 끝에서 이 글을 다시 본다면 과연 운명을 원망하고 있을까? 누구나 미래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 그 보이지 않는 어둠 같은 미래를 기대와 소망으로 칠해내곤 한다. 나 역시 수많은 소원으로 한 장 한 장을 가득 채웠고, 다음 장을 넘겨 보니 여기 와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그렇지만 앞으로 다양한 일들이 닥칠 한 해를 고작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해서 후회와 원망으로 가득 채우고 싶지는 않다. 그저 여생의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운명이든 아니든 열정과 낭만으로 채워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을 스물이라 부르자. 그리고 우리의 스물도 곧 그것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