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하게 방황하기

2025 상반기 성찰

by 해초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이제는 뭐든 좀 정해졌겠지~ 하고 무책임하게 기대했던 2학년 1학기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끝났다. 늘 그런 식이긴 했다. 100%를 채우지 못 할 걸 알면서도 과장된 목표를 세우고, 일단 50%를 달성하려 노력한다. 다 채우면 60%, 조금만 더 하면 70, 80, 95, 96, 99.999…… 근사치는 있어도 100이라는 완전한 수치와 숫자는 느낀 적이 없다. 내 갈망의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목표를 상기하는 일이니까.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왜 다시 꺼내 보지도 않을 성찰문을 그렇게도 많이 쓰라고 하셨을까? 당연히 세특 때문이었을 테지만, 세특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누려 보니…… 삶에도 성찰문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공개되는 일기 형식의 성찰이라니 좀 끔찍하긴 하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초등학교를 제외하고) 어떤 교육과정에서든 2학년이 제일 휘청거리는 시기인 듯하다. 악명 높은 중학교 2학년, 가장 불타오름과 동시에 연소한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끝없이 방황하는 대학교 2학년.

대학교 2학년으로서 보낸 반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방황만 했다.


왜 방황한다고 느끼는가? 따라가야 할 목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붙잡고 가야 할 목표가 없다. 무얼 하고 싶냐는 고질적인 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여전히 고장 난 나침반을 가지고 산행을 한다. 이렇게 고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잖아. 라고 조언해 준다. 아니 그치만 계획대로 사는 것과 목표를 향해 사는 건 너무 다른 이야기잖아. 나는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향하다'의 목적어는 '인류의 평화'가 될 수도 있고, '자산 10억'이 될 수도 있다. 될 수 있는 게 무척이나 많아서 더 버겁다.

사실 이렇게 방황해서 힘들다곤 했지만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작년보다는 좀 더 민첩하고 뚜렷하게 방황하는 것 같다. 뚜렷한 방황이라니.

내가 정의한 뚜렷한 방황이란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살아가기. 1학년은 단지 팔레트에 풀어진 물감이었다면, 올해는 그 물감을 붓에 묻혀 선이라도 직 그어 보는 정도. 여전히 이 붓질에 확신은 없지만 어딘가에 선을 긋고 있다는 건 느껴진다. 이렇게 긋는 선들이 훗날에 도움이 될 거란 나약한 믿음이라도 쥐어야 하는 걸까? 믿음을 확신으로 만들면 되지만 넘어질까 봐 무섭다. 답 내리기를 유예한다. 언제까지?


원체 여태까지의 글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으니 나름 고안한 해결 방법을 끄적여 본다. 방황을 끝내는 방법. 첫째, 뭐든지 하기. 다 해 보고 제일 맞는 걸 고르기.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긴 한데 여전히 불투명하다. 둘째, 나에게 가깝고 뚜렷한, 기회비용이 가장 작은 길을 우선 목표로 잡고 가다가 더 탐나는 게 보이면 목표를 수정하기. 충분히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나에게 열어 둔 약 101가지 미래의 모든 기회비용을 어떻게 알고 비교하지? 셋째,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넣는 방법은 냉장고 밖을 냉장고 안이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어쩌면 정서적으로 가장 편안한 방법이다. 방황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코끼리의 역설, 반항심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더 생각이 나는 법인데……. 기억 삭제 기술이 조금은 도움이 될 듯하다.


햄버거집 알바를 하면서 뭘 그렇게 대단한 얘기를 많이 하나 싶지만 가끔씩 직원들이 던지는 질문은 요상하게도 삶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막내 직원의 "해초 님은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과, 다른 하나는 최연장자 직원의 "해초 님은 살아가는 낙이 뭐예요?"라는 질문.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건넬 수 있는 두 문장이지만 이 두 가지는 나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하다가 질문을 받은 갑작스러운 타이밍—질문의 전후 맥락은 있었지만—이 첫 번째 원인이었고, 가볍게 던진 말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또 다른 원인이었다.


꿈이 뭐냐니. 이 질문을 친구가 아닌 어른에게 들은 건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일곱 살 차이 나는 막내 직원이 이런 말을 했을 때 좀 웃겼다. 점장님도 최고참도 아닌 막내 직원이 이런 말을 한 게 웃겼다. 요즘 대학생들의 꿈이 궁금한가. 직원분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고, 동시에 나에게도 필요했던 질문이었다. 유치하게 들리면서도 방황하던 내내 잊어버렸던 말인 것 같았다. 나는 대학생답게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꿈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장래희망'이나 '희망 직군'이 더 익숙해진 내가 안타깝기도 하다. 자랄수록 이상보다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 성장의 수순이겠지만서도…… 그 현실에 묻혀 각자의 이상이 점점 포기'당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 엄마에게 내 이상을 실현해 볼 거라며 계획을 말했는데, 가차없이 거절당했다.

꿈을 좇으라는 말은 정말 이상적인 말이 맞다. 그런데 이상적인 게 나쁘지만은 않은데, 굳이 이 팍팍하고 삭막하고 예측가능한 쓰라린 현실에 충실해야 할까…… 다들 상상하는 힘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도 현실에서 동떨어진 시선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은 게 아닌가(나만 고민하는 문제에 깊이 생각하기: 이게 내 특기인가 보다.)? 나에게 있어 목표를 정하는 과정은 현실과 이상의 적당한 내분점을 찾는 것인 듯하다.


취미를 물을 때와 삶의 낙을 물을 때,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건 당연히 후자이다. 취미가 내 삶의 낙인가? 직원분은 '관심사'가 뭐예요? 다음에 '삶의 낙'이 뭐예요? 라고 물으셨는데, 그 두 가지는 동일 선상의 위계인가? 누군가 단순히 취미를 물을 땐 즐겨 하는 일, 시간이 남을 때 찾아서 하는 일을 떠올려서 간단하게 답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잽잽훅만 받던 상태에서 레프트 훅을 얻어 맞은 것 같은 '삶의 낙'이라는 말. 내 삶에는 어떤 낙이 있지? 받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반문하게 된다. 반문한 질문은 누가 답하는 것인가요? 내 안의 내 안의 17번째 누군가에게 묻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저절로 목표도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장황하게 방황하는 척했지만 결국은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로, 원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하고 싶은 걸 찾는 일!! 이쯤 되면 인생사에는 결국 크고 큰 순환 고리 같은 철칙이나 진리가 존재할 법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오는 검은 베이글이 사실 현존할 수도 있다고? 영화 다시 봐야겠다. 여튼 수많은 진로 상담을 해 본 결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거였고, 다들 한 번 사는 인생 즐기라고 하니 현실이 어떻든 일단은 삶의 낙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면서 나의 낙을 자세하게 그려봐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해초 님 육 개월 동안 방황해 보니 어떠셨어요? 개인적으로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존재하는 이유는 방황하라고 주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대학생 신분만 방황할 수 있다는 건 전혀 아닙니다). 20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나와, 40대~그 이상의 많은 사람을 보며 인간은 생각보다 엄청 이른 시기에 정신적 자립을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데 이 정도는 방황할 수 있지. 이렇게 또 성찰이라 써 놓고 합리화라고 읽는다.

이번 학기에도 많은 도전과 성공과 실패를 했다. 그 중에 생각나는 건 연극 연출 해 보기(<페브리즈> 섹시하다고 해 준 모두에게 감사를),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일러스트 배우기, 끝없는 제휴 고민하기, 듀오링고로 독일어 시작하기, 직접 돈 벌기, 장학재단 지원 탈락하기, 심리상담 받아보기, 대외활동 시작하기, 많이 했네. 스스로를 칭찬해야 할 땐 기준을 낮추는 게 도움이 된다.

한편 정말, 정말로 이번 년도 안에는…… 삶의 낙이라는 것을 발명하든 발견하든 마련해서 목표가 생기면 좋겠다. 나는 목표가 없음 불안한 사람이니까. 이 불안을 방황이라는 명목 아래 언제까지고 끌고 가고 싶지 않으니까. 아직 내가 구상한 해결 방법 첫 번째를 실현하는 과정에 있으리라 믿는다. 아주 애새끼 같고 유약한 믿음이지만……. 정말 나는 아직 해보지 못 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이런 믿음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방황해 보고 결정해도 안 늦지 않을까? 사실 다음 학기에 들을 과목들에 벌써 설레. 시험 기간에 책가방에 마구 넣어 놓았다. 복수 전공은 나의 가치관을 또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구나. 다음 학기엔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여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열두 시가 지나 이제 오늘, 9시간 뒤에 이번 학기 성적이 공시된다. 방황도 잘~ 했는지 한번 보자. 아침에 성적을 보고…… 성찰을 좀 더 써야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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