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텍스트의 시대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죄다 너무 많다. 어딜 가든 텍스트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말하고 싶어도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잉여 자원들. 언어도 낭비된다. 시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다. 적은 말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단어를 걸러내고, 문장을 고르며 알갱이를 알갱이대로 보여주는 것. 화려하게 꾸미기에 소질 없는 이유가 여기 있나.
물론 길고 복잡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들도 존재할 테다. 예를 들면 신종 생물의 겉모습을 묘사할 때. 마음을 진솔한 고백으로 서술할 때. 문제의 답을 찾아갈 때. 자세한 언어가 필요하면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된다. 다만 나의 요즘 글쓰기와 더불어 소셜 미디어에 매초 올라오는 텍스트는 너무나도 날것이다.
날것의 텍스트, 즉 퇴고 없는 텍스트. 생각나는 대로 뱉어버린 글자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의 사고 과정을 투명하게 본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 그 다음은 패스트텍스트인가? 브릿지 없는 음악, 배속 재생 지원 유튜브, 서울 지하철의 배차 간격. 모든 게 빨라진 21세기 한가운데의 나는 날것의 텍스트에마저 중독되었다. 그래서 쓰는 데도 호흡이 가쁘다.
어쩌면 책은 내 재산 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일지도 모른다. 설령 방금까지 읽은 책의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제목마저 모른다 해도, 흐릿하게 스쳐간 문장들은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 내일의 호소력을 만든다. 그 호소력은 내 발화의 도화선으로 이어지며 불꽃처럼 타오르는 누군가의 의지가 된다.
/ 해초, <길가에 떨어진 문장들> 중
2020년에 쓴 글의 일부분. 내가 읽은 문장은 나의 호소력이 된다. 과거의 내 말에 공감이 간다. 내가 원하는 강력한 호소력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가 아닌 책에 있다. 정제된 문장을 찾고 싶다. 그래서 더 읽고 싶다. 글을 읽고 놀라고 싶다. 문장을 쓰려면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은 읽기와 지우기에서 태어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