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어린 시절의 나는 유난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왼쪽으로 넘겨 보는 일본식 만화책도 가지고 있다. 지브리 영화들 한 번씩은 다 봤지만 두세 번 여러 번 보는 영화는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지내다가 다시 그 영화를 봤다. 끝까지 펑펑 울면서 봤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왜 이 영화를 좋아했을까?
많이 보았었으니 오늘은 영화를 최대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해석 하나도 보지 않고 나대로 생각한 것들이니 다소 부족할 수 있음.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떠올렸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엇보다 ‘인간을 잘 보여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간이 너무 싫어져서 ‘인간’이라는 소재에 대해 유별나게 집중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만의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주인공 ‘치히로’는 우연히 어떤 통로를 통해 다른 세계에 진입한다. 그 다른 세계에서 부모가 돼지로 변한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 온천 주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원래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 길은 이미 깊은 바다가 되었고 치히로는 불투명해진 자신의 모습과 거대한 유람선에서 내리는 괴물들(여러 종류의 괴물들이 나오지만 그냥 다 괴물로 퉁치겠음)을 보게 된다. 자신이 밟고 있는 땅과 세계가 괴물들의 공간임을 깨닫지 않았을까?
이곳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 정확히 인간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는 치히로와 하쿠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없다. 린을 포함한 다른 일꾼들 중에는 인간과 매우 흡사하게 생긴 존재들도 있지만, 그 세계는 모두 인간을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들은 인간의 냄새를 유달리 잘 맡고, 인간의 모습과 구성 요소(피 같은 것)를 끔찍히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인간처럼 행동했다. 정말 다 다르게 생긴 괴물들도 말을 하고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였다. 형제자매가 있다. 때로는 이기적이지만 선심을 베풀기도 했다. 주로 마음에 따라 움직였다. 생김새를 제외하고는 그들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렇게 유사하게 만들어 놓고 작가는 왜 그들이 인간을 싫어하도록 설정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인 우리가 원래의 시선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치해 놓은 장치 같다. 그래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소외 집단인 ‘인간’의 입장에서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또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 그들에게 자연스레 이입이 되기도 했다.
인간과 다른 존재인 ‘괴물’의 세계로 꾸며 놓음으로써 처음 우리에게 이질적이고 낯선 환경을 제공하여 새로움을 주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인간의 세계라고 느껴 어느새 친숙한 공간이 되고 누군가에게 공감과 연민을 하게 된다. 이게 치히로가 이 세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다. 의도적인 이질성이 이 영화의 포인트이자 감동을 더 촉진시키는 배경이 되지 않나 싶다.
앞서 말한 ‘인간성’과 연결되기도 한다. 모두가 알듯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쉽게 저버리지 못한다. 이런 인간의 면을 이 영화는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곳에는 ‘가오나시(얼굴 없는 괴물)’라는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친숙한 괴물이 등장한다. 생각보다 초반부에서부터 치히로와 만나게 된다. 다리에서 처음 만났던 치히로를 가오나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도와준다. 이때까지는 마냥 착한 줄 알았지만, 강의 신이 저주를 풀고 욕실 바닥에 온통 금화를 뿌리고 간 날의 밤에 가오나시는 진정한 욕심을 보인다. 이후를 생각하면 처음에 치히로를 도와준 것도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는 욕심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개구리를 잡아먹고, 일꾼들을 잡아먹어 몸집을 점점 키운다. 결국 온천의 주인 유바바가 깨어나기도 전에 온천의 모든 일꾼들은 가오나시만을 위한 축제를 벌인다. 사실 그 일꾼들도 가오나시의 손에서 무한정 생산되는 ‘금화’를 가지기 위해 가오나시의 비위를 맞춰 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치히로와 가까운 린조차 금화에 홀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곧 유바바도 부자 손님이 오셨다며 뽕을 뽑으려고 노력한다.
가오나시는 자신의 배를 불릴수록 치히로를 찾는다. 치히로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치히로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어떤 욕망도 내보이지 않고 어떤 물질적 욕심도 갖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치히로에게 금화로 유인하여 잡아먹는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치히로가 가오나시의 불은 몸집에서 모든 것을 다시 토하게 한다. 그렇게 가오나시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 탐욕은 위에서 말했던 ‘이질성’과의 결합을 통해 더 부각될 수 있다. 이 온천에서 치히로와 하쿠를 제외한 ‘모든 괴물’이 가오나시를 위해, 정확히 말하자면 가오나시에게 간택받아 금화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갖다 바친다. 가오나시도 많은 것을 처먹고 치히로를 갖기 위한 욕망을 내보인다. 인간 사회에서 쉽게 느끼고 볼 수 있는 성격을 ‘인간을 제외한 존재’에게 투영했다. 왜 그랬을까? 인간의 선함을 강조하고 싶어서? 과욕은 참사를 부른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서? 모든 것들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생각해 보면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는 아주 못된 마녀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치히로가 제니바의 집에 갔을 때는 유바바나 하쿠처럼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뜨개질을 한 수 한 수 떠 가며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유바바와 제니바의 집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작가는 가오나시와 제니바를 통해 물질적인 삶, 탐욕만을 추구하는 삶이 결코 완벽하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랑은 아무래도 모든 작품의 보편성인 것 같다. 치히로는 많아 봤자 고작 열 살일 것 같은 아이인데,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숯검댕이나 돼지가 될 수도 있는 두려운 세계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냐를 물으면 나는 사랑 덕분이라고 답할 것이다.
치히로가 처음 이 세계를 맞닥뜨리고 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 하쿠와 카마지 할범과 린이 없었다면 치히로는 그대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쿠가 길을 알려 주지 않고, 카마지 할범이 그냥 내쫓아버리고, 린이 치히로를 챙기지 않았다면 치히로는 돼지우리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카마지 할범은 표현하지 않지만 따뜻한 심성으로 치히로를 품어 준 인물이다. 처음에 카마지 아래에서 치히로가 일을 하겠다고 받아달라고 하는데도 거부하지만, 린이 와서 치히로를 보고 놀랐을 때는 자신의 손녀라고 하며 린에게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한다. 연민이든 아니든 진심으로 치히로를 아껴 주고 나중에는 제니바의 집으로 갈 수 있는 40년이나 묵혀 둔 자신의 기차표를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내줬으니까.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은 인물로 꼽힌다.
린도 처음에는 다른 괴물과 다를 바 없이 인간을 싫어했다. 그래서 치히로를 처음 봤을 때도 첫인상이 좋지 않았고, 치히로가 센으로 바뀐 후 처음 일꾼이 됐을 때도 다른 괴물들이 자신에게 센을 넘기는 것을 언짢아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뒤로 하고 센을 진정으로 챙겨 주고, 저주받은 강의 신을 씻길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었다. 온천에서 유일하게 친언니처럼 생활을 함께 하고 센을 챙겨 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치히로도 그런 린을 많이 따르고 좋아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치히로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하쿠이다. 치히로와 하쿠는 사랑을 넘어 운명과 인연을 표현한다. 처음으로 해가 지기 전 다리에서 치히로는 운명적으로 하쿠를 ‘다시’ 만난다. 과거의 인연을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건지,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하쿠는 곤경에 처한 치히로를 진심으로 도와준다. 치히로도 하쿠의 도움을 받은 것을 기억해 하쿠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하쿠를 도와주러 무작정 길을 떠나게 된다.
하쿠가 용인 상태로 제니바에게 공격당해 큰 상처를 입고 기절했을 때, 치히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카마지 할범에게 하쿠가 제니바에게 저주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고, 강의 신에게 받은 경단을 먹여 저주를 풀어 준다. 린이 치히로를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나중에 하쿠가 정신을 되찾고 제니바의 집에 치히로를 데리러 갔을 때, 치히로는 과거의 그때와 같이 용을 타고 날아가는 강 위에서 하쿠와 만났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하쿠의 진짜 이름까지 찾아 준다. 진짜 이름을 알게 되어 하쿠는 더 이상 유바바에게 묶인 족쇄를 풀 수 있었다.
어쩌면 치히로가 이 며칠 간의 난관을 뚫고 자신의 원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큰 요인 중 하나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센으로 개명된 후에도 하쿠가 계속 '치히로'라고 불렀던 것도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치히로가 원래 이름을 고이 기억해서 이 세계를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치히로가 하쿠에게 받은 주먹밥을 먹으면서 정말 서럽게 우는 장면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하쿠가 치히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영화에서 '자아의 본질'을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이름도 자아의 일부분이고, 유바바는 그런 이름을 지우고 본래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하여 이 괴물들의 세계에서 영영 살아가도록 만든다. 엄마와 아빠도 결국 본래의 자아를 잃고 돼지로 변하게 된 것이다. 위 얘기를 종합하면 본래의 '나', '자아'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 철학 발표 시간 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내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하고, 취향을 만들고, 주변 환경을 조성한다는 등 진정한 '나'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이 지금의 해석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치히로가 애정을 느끼는 코하쿠누시, 린, 카마지 할범과 같은 사람들이 고의가 아니더라도 곁에 있고 행복을 바라면서 치히로의 본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 게 아닐까. 하 너무 슬프다. ㅠㅠ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소름 돋았던 것은 작가의 연출이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때마다 0.01초씩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짠 모든 사람들에게 감탄을 표했지만, 이것과는 다른 방면에서 많이 놀랐다. 의도적인 그림체인지는 모르겠으나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을 제외한 뒷배경은 모네의 그림처럼 흐릿하고 모호한 느낌을 주었다. 그것 때문에 인물들만 좀 더 선명하고 부각되어 보였다. 모네의 그림을 매우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그것과도 닮았고, 배경이 예쁘기도 해서 시선이 계속 갔다. 그래서 특히나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많이 느꼈다. 영화 초반부 거리뷰에서 인물과 배경의 선명도가 굉장히 대비되는데 사진을 못 구해서 아쉽다.
두 그림 모두 인물과 배경의 선명도가 다르고, 색채까지 다르다. 구름이나 꽃들이 확실히 인물들과 다르게 뭉개진 그림이다. 색도도 인물들의 옷이나 머리카락 색보다 더 파스텔 톤에 가깝고 밝다. 너무 오랜만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봐서 당연한 걸 갖고 말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들과 배경 톤이 확실히 다르다는 건 알겠다!!
<이웃집 토토로>는 인물과 배경 모두 짙은 채도임을 알 수 있다. 숲이라 뭉개진 느낌으로 칠했지만 채도가 비슷해서 딱히 몽환적이라는 느낌은 덜하다. <마녀 배달부 키키>도 비교적 현대적인 시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서 뒷배경의 채도가 인물들보다 낮고, 선명하다. 선을 다 따 놓았다. 이 사진들과 비교하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그나마 가장 몽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님 말고.
그래서 이런 내 개인적인 분위기와 느낌에 의하면, 감독과 작가는 의도치 않게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고, 도저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겪는 이 치히로의 모험이 독자들에게도 한 번쯤은 꿔 봤을 '꿈'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특히 어릴 때부터 이 영화를 많이 본 나에게는 저 낯선 세계와 사람들이 오히려 친숙하고 길게 느껴지는 것 같다. 키키나 하울, 토토로 등 다른 영화들도 많이 봤었는데 다른 건 거의 기억이 안 나고 이 영화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내가 이 영화를 유난히 좋아한 것일 수도 있다. 감독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것 같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봤는데 아직도 해석할 거리가 정말 많을 정도로 감독이 여러 곳곳에 많은 것들을 숨겨 놓았다. 단순히 어린아이들의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치히로와 하쿠의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지만 이렇게 단편 영화로 끝낸 게 여운도 길게 남길 수 있고 그만큼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치히로와 하쿠가 그냥 너무너무 행복하게만 살기를 바란다……. 둘이 다시 만나겠지? 치히로는 그 세계를 절대 잊지 못하겠지. 엄마 아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치히로는 죽기 전까지 마음속에 비밀로 묵혀 둘 것 같다. 치히로가 자신을 혐오하는 괴물들만 가득한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과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이 너무 슬펐고, 그 나이의 나는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짜 성인이 되진 않았지만 거의 다 자란 청소년의 시점에서 치히로를 보니 치히로가 단순히 어린 열 살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