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LEBREAKER 35. 이날치밴드
마케팅 업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요즘 누가 제일 핫한지 알아보는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을. 답변은 의외로 간단한데, '틀면 나오는 사람'이다. TV와 라디오, 밈을 포함한 유튜브, 기사 등에 일단 많이 보이면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집중적으로 광고비를 쏟아붓는 식음료와 통신사 광고에 등장한다면 요즘 사람들이 제일 관심 많아하는 대상이라고 안심하고 믿어도 좋다.
요즘 틀면 나오는 사람은 '이날치밴드'다. 전대미문의 흥행 곡 '범이 내려온다'로 비의 1일1깡에 이어 1일1범 신드롬을 일으키더니, 갤럭시Z플립의 광고까지 섭렵했다. 이병헌이 메인 모델로 등장하는 피자알볼로 광고에는 '도마도소스를 끓여라-' 같은 음악까지 곁들여 얼굴을 비춘다.
(그의 유명한 명언 'Making money is art, and working is art, and good business is the best art'에 덧대어 상상해보면) 분명 앤디 워홀이 살아있었다면 이날치밴드를 보며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잘 팔려야 예술이요, 즐겨야 흥이로다' 그렇다. 잘 팔려야 예술이다. 잘 팔린다는 건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긴다는 가장 정직한 기준이니까.
이날치밴드의 음악을 두고, 말들이 많다. 팝에 판소리를 접목했다느니, 모던락에 판소리를 접목했다느니, 리듬에 읊조리는 장르이기에 힙합으로 봐야 한다느니 하는 식이다. 리얼 케이팝이라고 해석하는 말까지 있다.
정작 이날치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갓 쓰고 도포 입고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고, 이날치를 이렇게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인 거죠" 판소리는 그 시작이 스트릿이다. 모두가 글을 알기 어려웠던 아주 옛날에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북소리에 맞춰서 음악으로 전달하는 길거리 공연으로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특정한 장르로 이름 붙여 자유로움을 묶을 수 없다. 듣는 사람에 따라 팝으로, 힙합으로, 락으로, 퓨전으로-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날치밴드의 각 멤버들은 이날치밴드만의 음악 외에도 갓 쓰고 도포 입고 진행하는 판소리 완창도 여전히 한다. 유럽의 다양한 나라들의 민속 음악가들과 함께 공동작곡도 한다. 영화와 광고음악에도 여전히 참여한다. 진짜 예술은 경계가 없다. 이날치밴드는 그냥 흥 좋은 음악인들이고 눈치 보지 않는 예술가들이다.
앤디 워홀은 평생에 걸쳐 대중을 위한 예술론을 펼쳐왔다. '이건 꼭 이래야 한다'라는 엄격한 엘리트주의의 예술을 유쾌하게 따돌렸다. (그래서 고정관념을 깨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소비로 캠페인을 펼치는 뉴프레임코웍스의 롤모델이다.) '예술이 별건가,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식의 가벼운 접근은 경계를 없애고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줬다.
군가 못 박듯 정한 기준이나 권위보다, 보고 느끼는 대로 즐기는 것이 인생이요 예술이다. 대중이 이날치밴드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눈치 보지 않고, 주목받기 아주 오래전부터 자유로운 방식으로 재치 있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의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호랑이 자수가 놓인 양복에 갓을 써도, 색동 비단으로 양장을 지어 입어도, 그 옷을 나눠 입고 앰비규어스컴퍼니 안무팀과 무대에 올라도 어색하지 않다. 판소리 망친다고 곱지 않았던 시선은 발로 차버리라지-하고 응원을 외쳐주고 싶은 이유다. 동화로 읽어 다 아는 토끼전 내용이 새로운 형식을 입으니, 그저 즐겁기만 하다. 역시 잘 팔리고 싶다면, 이날치밴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