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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Mar 05. 2024

[우울증 극복기] 다섯 번째 이야기

그래도 안 궁금해요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1950년도에 처음으로 세로토닌과 도파민은 우울증과 아주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후 생리심리학 및 상담심리에서는 중증 우울증 단계로 넘어왔을 때는 효과적인 심리치료를 위해서는 약물 치료과 동반되어야 한고 배웠다. 그 이유는 상담사와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심리적인 치료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약물로 기분 저하처럼 망가진 일상 리듬을 되돌린 후에 조금씩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했던 17~18년도에는 세로토닌은 신경 전달 물질로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졌고 스트레스로 인해 농도가 낮아진다고 배웠었다. 우리는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세로토닌은 우울증에 연관이 없다는 논문도 많다. 22년도에 올라온 기사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될 만큼 세로토닌의 농도는 우울증과 관련이 없다고 나왔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그리고 세로토닌, 이렇게 세 가지 호르몬이 우울증에 가장 중요하다가 알려졌고 심지어 치료제도 삼환계 항우울제 (TCA)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약은 과거에는 ADHD 치료제로 쓰일 만큼 유명하고 유용한 치료제였는데 더 좋은 약이 개발되어 이제는 쓰이지 않는다. 이처럼 과학이 발달하면서 아마 세레토닌도 이제는 항우울제로 쓰이지 않을 거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분이 저하되어 호르몬 분비가 불규칙하거나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호르몬이 저하되어 우울증에 노출되는 확률보다는 내 기분에 따라 호르몬이 저하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강제로 호르몬을 분비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으로 운동이 우울증에 가장 많이 도움 되는 이유가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을 많이 나오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 및 엔도르핀이 체내에 분비되면 기분도 좋아지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컨디션이 좋다'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작용한다. 이럴 경우 기분장애가 있는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자연치유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나 같은 경우 주기적인 운동 습관을 만들고 나서 더 이상 약을 찾지 않게 되었다. 


입원절차 그런 거 없고 바로 입원실 쪽으로 데려갔다. 몇 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많은 남자 간호사분들도 함께 했던 기억은 가득하다. 입원실 들어가기 전에 남자 간호사 세 분에 도움 비슷한 감시와 함께 샤워를 했고 들어가기 전에 체중을 쟀다. 당시 키 177에 49킬로였던 기억이 난다.

깔끔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개인 병실로 안내해 주었다. 밤은 깊었고 그날은 많은 일도 많았고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몸을 던지지 않고 무사히 편한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꼈을까? 후회보단 마음이 놓였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아침에 눈을 떴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밖에 통유리로 된 창문이 보였다. 무시하고 누웠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났을 때 간호사분이 들어오셨다. 아침 식사 안내를 도와주러 오셨다.


병실에 나오니 병실 12개 정도 있는 복도가 있고 가운데에 거실이 있었다. 거실로 가보니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곳은 식당이었다. 아침에는 빵과 우유를 받았는데 식판에 받았다. 거실에서 식판과 함께 음식을 받고 문이 없는 식당 가서 앉아서 먹었다. 처음으로 거기에 입원해 있는 분들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내 앞에 남성분과 그 옆에 여성분 그리고 내가 앉은 곳 옆에는 한 청년이 앉았다. 내가 제일 어리겠지만 내 옆에 있는 청년도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식사를 마치고 정리했다. 여자 간호사 세 분이 거실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고 뒤쪽에 남자 간호사 두 분도 있었다. 궁금했던 건 분명 병실은 많은데 인원은 고작 6~7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전상 감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분들은 약 복용과 치료 과정을 통해 나아지면 나온다고 어느 책에서 봤다.


정리가 끝난 후 익숙하듯 같이 있던 분들은 약을 배급받았다. 나도 한 알 받았다. 물과 함께 약을 먹었고 거실에 앉아서 멍 때렸다. 진짜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병실로 돌아가서 잠을 더 잤다. 그렇게 1시쯤 점심시간이 왔고 또 아까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다 먹고 정리를 했고 잠도 안 온다. 3시간을 기다리니 면회시간이 찾아왔다.


많은 분들이 들어왔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아빠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내 속옷과 함께 들어왔고 심심했던 나는 아빠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때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낯선 환경을 꺼리는 나에게 아빠와의 만남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 이유는 내가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 낯설어하는 환경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아빠는 돌아갔고 내일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누군가 말을 하고 나니 용기가 좀 생겨서 나랑 나이가 가장 비슷해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있는 거 어때? 심심하지 않아?"


"어젯밤에 처음 들어왔나 보네. 나도 지금 일주일째인데 너무 지루해"


"그러게.. 여기 책은 좀 있던데 읽어봤어?"


"보다시피 책도 별로 없어서.."


짧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아까와 같이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고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먹었다. 굉장히 내향적이었던 나는 그렇게 서로 말을 했는데도 대화를 더 이어가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 정리 후 약을 먹고 병실로 돌아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도 않고 아무 생각도 심지어 슬프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다음날에도 마찬가지로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가 다시 침대에 누워서 멍 때렸다. 그 시절 스마트폰이 있었을 때라 노트북이 아니라도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올짓하지 말고 집에서 가만히 핸드폰 하면서 놀걸..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심했다.


아침을 먹고 정리 후 약을 먹고 다시 잠을 잤다. 일어나니 점심시간이고 반복된 일상을 보냈다. 식사에 관심이 없던 내가 심심해서 식사시간을 기다릴 정도였다. 그나마 먹을 때만은 심심하지 않으니까. 오늘은 책을 펴보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덮고 어제 이야기 나눴던 친구랑 얘기를 나눴다.


"아까 보니까 너 약 10개씩 먹던데.."


"그러니까.. 약이 너무 많아.. 나는 최소 21일은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나갈 수도 없어"


"왜 무슨 일로 들어왔는데?"


"대마초 해서 들어왔어"


"나는 우울증으로 들어왔어"


신기했던 건 내가 동양인인데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무도 내 인종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원래 유럽은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는 게 예의 차리는 거라 말할 정도로 동양인의 대한 인종차별이 좀 있다. 


"안녕? 이거 책 재밌는데 같이 읽을래?"


"아니야 괜찮아"


다른 분이 말을 걸었는데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기억으로는 40대쯤 돼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 면회시간이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이 시간만을 엄청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한테 여기는 너무 지루하고 심심하다고 얘기했다. 밥도 잘 나오는데 진짜 너무 재미없고 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들어줬고 기억나는 문장은 '그러니까 빨리 나와'라고 하셨다. 1시간이 끝나갈 때쯤 장난으로 가지 말라고 아빠한테 업혔다. 사람의 체온과 피부까지는 아니지만 그렇게 맞닿는 게 좋았던 기억도 있다. 아마 그건 장난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또 밤이 찾아왔고 나는 내 병실로 돌아갔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병원이라는 곳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낯설어서? 지금 이때를 돌아보면 알게 된다. 느낌도 경험도 감정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흔하게 느끼는 증상이다. 그렇게 나는 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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