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발표를 위해 캐나다에서 떠나는 프랑스 리옹 여행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를 지원할 때 몰랐던 사실이 하나있다.
해외 박사 과정 학생들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해외학회에서
발표를 해야하고, 학교가 어느 정도 여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예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기에
항상 흥분이 된다.
그렇게 올 해 두 번째 국제학회 참석을 위해 밴쿠버에서 프랑스 리옹으로 출발한다.
생각해보면 프랑스는 항상 설레는 나라였다.
소피마르소로 입덕을 해서, 지금은 이름도 가물한
장 자크 베닉스, 레오 카락스, 뤽 레송들의 영화들에 빠져있었고,
프랑스 문화원에도 종종 들러보곤 했다.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프랑스로 불어 어학 연수를 나갈 계획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국에 잠시 있을 때도 영국보다 프랑스의 소도시 곳곳까지 찾곤 했는데,
지금의 프랑스가 내가 경험하고 상상한 프랑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에는 회의감이 든다.
운좋게도 세계화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던 학교를 다닌 덕택에 전 세계에 일었던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을 먼저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세계 곳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들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화의 얼굴이 아니었다.
호주 멜버른 영화제에서 무협영화 동방불패를 두고 나눴던 퀴어문화에 대한 열린 토론들과,
이탈리아에서 세계의 다양성을 공유하던 실험극단,
그리고, 갓 스물이 넘은 유럽애들과 노천카페에서 나누었던 다양성과 세계 비전에서
지금의 세상은 한참 벗어나 있다.
그 때 만났던 친구들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는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전 세계가 하나되는 세계시민적인 이상으로 들뜨게도 했지만,
그 결과물은 경제적 이윤으로 물든 선진국들의 이윤 중심의 플랫폼이 되었고,
사람들은 더 멀어지고, 화폐적 가치로 모든 것을 계량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사고 하는 문화만 남은 것 같다.
돈이 안되는 과는 통폐합되고,
변호사와 의사만이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가는 단조로움의 세계를
오늘날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는 엘리트 그룹들의 식상함과 편협한 시각을 날마다 경험하며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지금 어린 누군가가 시인이 되겠다고 하면 기성세대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어린 누군가가 프랑스가 좋다고 불어를 배우러 나가겠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이라고 화답할 것인가?
세상 다양한 곳에서 진정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면
그들의 생존적 고민을 해결해 준다면,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릴 때 유럽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는 진정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가 개인적으로, 또 일하며 경험한 것들은 작더라도 기록하고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이 모든 여정들은 생각보다 힘에 부치지만,
그냥 그렇게 되는대로 한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