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교역, 수덕사, 덕산온천, 예산시장, 예산역
아산역에서 13시 49분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아산역은 천안아산 KTX역 옆에 바로 붙어 있다. 아산역 위치를 몰라서 한참을 찾았었다. 온양온천역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널따란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위치가 궁금하여 네이버 지도를 열었다. 예산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산땅이다. 나는 기차나 버스로 이동 중에 지도를 가끔씩 들여다본다.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인근의 시, 군은 어디인지.. 등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넓게 펼쳐진 평야를 기차가 가로질러 가고 있다. 예산은 내륙이라서 산이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넓은 평야에 눈을 떼지 못했다. 모내기를 마친 논에는 짧은 키의 벼들이 열병식 하는 군인들 같이 오와 열을 잘 맞추어 서있다. 논마다 벼의 색깔이 달랐다. 심긴 시기에 따라 노란색을 감미한 녹색과 엷은 녹색, 진한 녹색 등 다양했다. 벼 사이로 논의 물빛이 비치기도 했다. 시야를 넓혔더니 넓게 펼쳐진 논이 마치 모자이크 모양의 한 폭의 풍경화였다.
예산역에 도착하기 전에 플랫폼이 아닌 선로 위에 갑자기 기차가 멈췄다. 차량 이상으로 점검을 위해 멈췄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6~7분 정도 지나자 기차가 움직였다. 예산역에서 잠시 정차 후 삽교역을 향해 출발했다. 삽교역에 도착하기 전에 기차는 다시 멈췄다. 기차가 삽교역에 도착하면 10여 분 후에 오는 버스를 타려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는 조급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차가 삽교역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도 기차는 꿈적하지 않았다. 10여분 지나서야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삽교역에는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수덕사 가는 버스 시간도 이미 지나간 후였다.
수덕사로 가는 다음 버스는 15시 30분 버스이다. 택시를 탈까 생각했으나 버스나 기차 여행을 즐기는 나의 여행방식에따라 조금 늦더라도 버스로 가기로 했다. 템플스테이 입산 시간이 넘으니 수덕사 템플스테이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삽교역 내외부 등을 둘러봤다. 승객대기실, 화장실 등 아담하고 깨끗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전형적인 시골역이었다. 삽교역 앞, 그러니까 버스정류장 뒤쪽에 예산관광지도가 커다란 잎간판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그 입간판 뒤쪽에는 예산의 10경과 예산의 8미가 소개되어 있었다. 나의 예산 여행일정에는 1경인 수덕사와 10경인 덕산온천이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예산 10경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간 핫스폿인 예산시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버스 올 시간이 될 즈음에는 버스 오는 방향에서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기다렸다. 버스정류장에 표시된 시간에 거의 맞게 수덕사행 버스가 왔다. 덕산온천지구를 지나 30여분 만에 수덕사 정류장에 도착했다. 수덕사 앞에 형성된 상가 거리를 통과해서 덕숭산숭덕사라고 표시된 일주문을 지나자 템플스테이 안내 표시가 보였다. 템플스테이 사무실이 있는 백운당에 도착해서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직원이 나왔다. 반팔티셔츠, 바지와 조끼를 받아서 방으로 갔다. 직원에게 방 사용 주의사항, 식사시간, 예불, 남녀 호칭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사찰이라는 색다른 공간에서 약 20시간을 보냈다. 9시 조금 넘어서 잠을 잤고, 새벽 5시경에 일어났다. 사찰.... 절이라는 생각보다는 오랫동안 알았었던 고향에서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었던 숙소는 잘 정리된 깨끗한 한옥이었다. 산과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나무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내 고향 시골 마을에서 느끼는 그 정취와 비슷했다. 새벽에 들렸던 새들의 명랑하고 경쾌한 지저귐도 나의 영혼을 깨우는 아름다운 소리였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고향에서 늘 들어오던 노래였다. 다만,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었다. 다시 그 소리를 듣고 내 귀가 열리고 깨어났다.
수덕사에서 세끼 식사 모두 정갈하고 담백하고 맛있었다. 고기가 전혀 없다. 일반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자신이 먹을 만큼만 가져오는 자유배식이었다. 내가 가져온 밥, 반찬과 국, 과일을 모두 깨끗이 먹었다. 내가 먹은 식기는 내가 세척했다.
템플스테이 기간 중 총 9명과 이야기를 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4명, 수덕사에서 스님과 직원으로 일하는 5명이다.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외국인 세 명, 한국인 한 명, 총 4명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을 비롯한 직원 분들도 얼굴이 밝고 친절했다. 특히, 직원 다섯 분 중 세 분이 영어를 잘했다.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그분들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더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불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템플스테이를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종교를 떠나, 문화로 인식하고 예불 참여도 적극 고려해 볼 생각이다. 수덕사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는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절(사찰)에 대한 근거 없는 막연한 거리낌을 갖고 있었다. 수덕사에서 머무르는 20시간 동안 그 거리낌이 완전히 씻겨졌다. 스님들도 엄격히 절제된 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여행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덕산온천으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수덕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덕산을 경유하여 예산으로 가는 버스는 12시 45분에 있다. 운 좋게도 25분만 기다리면 된다. 시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25분은 짧은 시간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어느 온천으로 갈까 검색했다. 평점이 높으면서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온천으로 결정했다. 시간에 맞게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탑승한 지 15분 만에 덕산에 도착했다. 온천까지는 5분 정도 더 걸어갔다. 온천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비가 물 붇듯이 쏟아졌다.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순간적으로 뛰었으나, 단 몇 초 사이에 바지와 신발이 많이 젖었다.
카운터에서 입장권을 샀다. 온천 입장료는 7천 원이었다. 예상보다 너무 쌌다. 동네 목욕비도 1만 원이 넘는데, 7천 원이라니.... 너무도 저렴했다. 들어가 보니 오래된 온천탕 분위기가 느껴졌다. 온천탕이나 바닥 등 내부는 깔끔했다. 온탕으로 들어가서 반신욕을 시작했다. 목욕탕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목욕탕이나 온천에 가면 늘 반신욕을 한다. 전신욕을 하고 나면 몸이 나른하고 피곤해서, 언젠가부터 반신욕만 하고 있다. 몸이 뜨거워지면서 상체와 머리에서 땀이 스멀스멀 나오는 것이 느껴지자 온천탕에서 나왔다. 몸에서 나오는 땀을 온전히 배출하기 위해 대리석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하얀 수건으로 배 등을 덮고 눈을 감았다. 땀이 스멀스멀 나올 때 자는 낮잠은 꿀이다. 눈이 떠질 때까지 잤다. 팔과 다리 등을 봤더니 온몸이 작은 땀방울로 가득 차있었다. 보석같이 솟아 나온 맑은 물방울에 손가락을 댔더니 물이 주루루 흘렀다. 찬물 샤워로 땀을 씻어 낸 후 냉탕에 들어가서 몸을 완전히 식혔다. 반신욕과 낮잠 등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예산시장으로 가는 버스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온천욕을 마무리하고 나왔다.
15시 30분 예산행 버스를 탔다. 중간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많이 탔다. 청소년들을 보면서 휴일이 아니고 평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네이버 지도에 설정된 도착지가 가까워 오고 있다.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네이버 지도와 지도의 팝업 메시지에 눈을 떼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6분 정도 걸어갔더니, 예산시장 안내판이 보였다. 여전히 비는 내렸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통해 예산시장이 다른 지역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서 방문을 결정했었다. 시장은 한산했다. 문이 닫혀 있는 상점도 꽤 보였다. 테이블이 많이 준비된 널따란 시장광장은 홈베이스 역할을 하는 듯하였다. 식사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3~4개 테이블에만 사람들이 않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현재 시간 16시 40분,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약간 이른 시간이다. 17시 47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 하는 일정을 감안할 때 저녁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시장을 둘러 보았으나, 마땅한 식당과 메뉴를 찾지 못했다.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이 상당히 있었고, 시장이 한산했다. 젊은 사람들 스타일로 구성되어서 그런지 가고 싶은 식당이나 먹고 싶은 메뉴를 찾지 못해서 아쉬웠다. 앞으로 예산시장이 활성화되어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경제에 보탬이 되고, 찾는 사람들에게도 입과 눈이 즐겁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예산시장을 나와서 예산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걸었다. 저녁식사하기에 마땅한 식당이 있는지 보며 걷는데, 멀리서 왕돈가스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앞으로 걸어가서 보니, 17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라고 쓰여 있었다. 수덕사에서 먹은 세끼에 고기를 못 먹어서 그런지 돈가스가 먹고 싶었다. 그 식당 앞에서 서성거리며 식당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레이크타임 종료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식당문이 열리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와서 식사하실 거냐고 물으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왕돈가스와 맥주 1명을 주문했다. 비 오는 날에 따뜻한 돈가스와 시원한 맥주.... 나름 운치 있는 조합의 만찬이다. 예산에서 마지막 식사도 맛있었다. 식당을 나와 버스를 타고 예산역에 도착했다. 예산역에서 17시 47분, 서울행 서해금빛열차에 몸을 맡기면서 예산여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