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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와 배로 가는 제주의 비양도

제주의 아름다운 섬 비양도, 대중교통으로 당일 여행

by 꿈꾸는 철이


제주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하루 더 머물렀다. 딱히, 뭘 하거나 어디를 가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숙소에서 생각했다. 제주도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장소, 동료들이 방문했었던 곳 중 좋았다고 했던 장소 중 여러 군데가 생각났다. 추자도, 한라산 둘레길, 비양도 등.... 당일, 나 혼자 유쾌하게 갈 수 있는 데가 어디일까 생각해 봤다. 추자도는 당일에 갔다 오기는 빠듯했고, 내 비행기 시간과도 맞지 않았다. 한라산 둘레길 중 며칠 전에 시간이 없어서 다 걷지 못한 장생이 숲길을 걸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숲길을 혼자 걷는 것은 많이 끌리지 않았다. 비양도로 결정했다. 네이버 지도앱을 열고 숙소에서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내일 갈 데를 정했으니, 자야겠다.


9시 조금 넘어서 숙소에서 나왔다. 시내버스 제주오일장 정류장까지 가서 거기서 버스 202번을 탔다. 한림항까지는 1시간가량 걸렸다. 버스 노선이 바다와 가까워서 해안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호테우 해변, 애월을 지나서 한림항에 도착했다. 비양도에 갔다 오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으면 애월읍과 이호테우 해변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림항에는 10시 30분경 도착했다. 비양도에 들어가는 배 시간은 한 시간가량 남았다. 배표를 사고 나서 한림항 주변을 둘러봤다. 한림항에는 고기잡이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배 위에는 어망을 손질하는 어부들이 눈에 띄었다. 두 세 사람이 짝을 이뤄 작업하는 모습 속에 능숙한 손놀림이 느껴졌다. 검게 그을린 얼굴은 건강함과 함께 바다내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정박해 있는 수십대의 고깃배들의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였다. 멀리 방파제 너머로는 풍력발전을 일으키는 회전날개(풍력 터빈 블레이드)가 짖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졌다. 10여분을 걸었다. 방파제 어귀에 팔각정이 보였다. 그곳을 향해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밝은 태양 아래 길기 뻗은 방파제,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바다, 바다 위를 장식하고 있는 풍력 회전날개를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등을 돌렸다. 멀리서 한라산이 뚜렷이 보였다. 넓게 펼쳐진 한라산의 하부부터 한라봉의 봉우리처럼 솟아 오른 한라산 정상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사방으로 감싸고 있는 멋진 풍경에 취해 있는 사이에 배 출발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 타러 오는 길에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분들에게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크게 인사했다.


한림항에서 출발한 배는 십여 분 만에 비양도에 도착했다. 배는 만석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배의 옆면에 서서 비양도와 제주도 본도를 번갈아 보며 풍경을 즐겼다. 배에서 내렸을 때는 11시 40분 정도였다. 선착장에는 호객하는 식당 주인도 보였다. 어디서 식사할까 생각하다가 호객하는 분이 가는 쪽으로 조금 떨어진 채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다 보니, 왠지 들어가고 싶은 식당이 눈에 띄었다. 백연향 식당이었다. 식당 간판과 정원이 정겨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면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는 표지판도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서 식사 주문을 하고 났는데, 막걸리가 생각났다. 막걸리 한 병이 내게는 많아서 잔으로 파냐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렇게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사할 때 조금 마시고, 나머지는 등대 갔다 와서 마셔라고 제안했다. 나는 막걸리 한 병 달라고 했다. 그때 여성 한 분이 식당에 들어오면서 식사를 주문하고, 나에게 대뜸 막걸리 한 잔 주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도 막걸리 한 병이 많아서 고민했었기 때문에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그분은 자연스럽게 나의 테이블에 앉았고 함께 식사했다. 내가 세 잔, 그분이 두 잔을 마셨다. 그분은 자전거로 제주도 여행 중 비양도 들어왔다고 했다. 나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식탁에서 일어나서 비양봉 정상에 있는 등대를 향해 출발했다. 식당에서 지체하다가는 동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둘러 나왔다. 혼자 만의 여행이 주는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솔길을 조금 걷자 보라색의 유채꽃밭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앞쪽은 바다가 전경이었고, 뒤쪽은 제주도 본도와 한라산이 배경이었다. 오르막을 지나서 나무계단이 등대 가는 길로 이어졌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간혹 마주치기도 했다. 산죽으로 에워싸여 하늘도 보이지 않은 이색적인 길을 지나, 언덕에 오르니 비양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 세워진 포토존이 있었다. 그 상징물 사이로 시야를 멀리 잡았더니 한가운데 한라산이 들어 있었다. 멋진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함께 담았다. 정상이 보였는데 하얀 등대가 아담하게 서있었다. 등대 앞쪽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등대 쪽으로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졌다. 등대 아래에 도착해서 보니 등대가 생각보다 컸다. 등대 주위를 돌며, 등대와 풍경을 감상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비양도 해변 검은 돌에 부딪치며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 내는 파도, 제주도와 멀리 한라산의 위용이 비양도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비양도 둘레를 돌기 위해 식당으로 왔다. 함께 밥 먹었던 그분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전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페달을 가볍게 밟으며 해변 둘레길로 나아갔다. 걸으면서 섬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시야를 조금 길게 봤더니 짖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해변의 검은색 현무암에 부딪치는 파도, 그 너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바다가 자전거 페달을 멈추게 했다. 자전거를 여러 번 멈춰서 풍경을 구경하고 감상하곤 했다.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배 출항시간을 간음해 보니, 한 바퀴 더 돌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면서 다른 방향에서 풍경을 즐겼다. 내가 풍경을 감상할 때 나를 추월했던 자전거를 추월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식당에 반납하고, 백팩 등을 챙겨서 등에 메고 제주도행 배에 올랐다.

한림항에 도착하여 제주시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비행기 시간을 어리 짐작해 볼 때, 애월읍과 이호테우해변에 들러서 가도 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애월읍의 용천수를 보고, 동네를 산책했다. 이호테우해변에서 바닷물과 모래가 만나는 경계지점을 따라 30여분을 맨발로 걸었다. 오늘 걸으며 발이 받았던 피로가 말끔하기 씻겨지는 시원한 시간이었다. 이호테우 해변 끝 바다 위에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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