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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라도 드리자

찾아뵙지 못했으면 전화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by 꿈꾸는 철이

하늘이 높고 푸르다. 산은 울긋불긋 물들어 바람에 흔들린다. 정오의 햇볕은 따뜻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빛으로 길 위에 흩어진다. 낙엽을 밟으며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문득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10월 한 달, 얼굴을 뵙지 못했다. 어제, 쉬는 날이었음에도 전화 한 통 걸지 않았다.


잊기 전에 전화를 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늦가을 새벽바람처럼 스산하다. “오지 못하면… 전화라도 하지.” 그 말은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서운함으로 메워져 있다. 나는 부주의한 말로 불을 붙인다. “안 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시죠.” 전화기 너머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차가운 바람이 빈 의자 사이를 스치듯 통화가 끊긴다.


매주 일요일, 교회 예배와 봉사를 마치고 오후 4시쯤 부모님 댁으로 향하던 길은 28년을 이어온 익숙한 궤적이었다. 결혼 후 쌓아온 시간 속에서, 한 주에 한 번은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뿌리내렸다. 때로는 내가 전화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걸기도 하셨다. 하지만 최근 한 달, 그 궤적은 끊겼다.


어머니는 걱정하셨을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 불안으로 물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문득,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거나 아내의 연락이 끊겼다가 연결됐을 때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안도와 서운함이 뒤엉켜 목소리를 날카롭게 만들었던 기억, 어머니의 “오지 못하면… 전화라도 하지.”라고 말씀할 때의 차가움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걱정이었을 것이다.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은 나를 붙잡았다. 분주함 속에서 어머니를 향한 시간을 미루다, 어느새 낙엽처럼 쌓인 공백이 어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매주 한 번, 그 루틴이 무너진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마음을 파고든다. 다시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에서 망설이고 있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전화를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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