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와 버스에서 보고 느끼는 풍경과 사람과 삶
포항역에 도착했다. 동해안 기차 여행의 종착지로 포항을 선택한 것은 우연 같으면서도 운명 같았다. 낯선 도시의 첫인상을 안고, 호텔로 향하는 308번 버스를 탔다. 30분 남짓, 창밖으로 스쳐가는 포항의 풍경을 보며 호텔에 닿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백팩을 내려놓은 뒤 서둘러 나왔다. 시계는 18시를 넘겼고, 죽도시장에서 저녁을 해결하자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209번 버스를 타고 10분도 안 되어 시장에 도착했다.
죽도시장 입구의 커다란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아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식당을 찾으며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병행했다. 시장 안은 한산해 휴대폰을 보며 걸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AI 추천으로 찾은 죽도시장 내 ‘경북보리밥’ 식당에 도착했으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실망감이 스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생선과 대게를 파는 상점들은 불을 밝히며 활기차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시장에서 유일하게 생동감 넘치는 구역이었다. 계속 걸으며 식당을 찾아봤지만, 비위가 약한 탓인지 구미를 당기는 곳을 찾지 못했다. 텅 빈 것 같은 시장의 분위기와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서 배고픔이 느껴지는 나의 상태가 닮아 있는 듯했다.
결국 시장을 빠져나와 거리에서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10분쯤 걷다가 삼겹살 집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가 삼겹살은 3인분 이상만 판매한다고 했다. 2인분은 몰라도 3인분은 먹을 자신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2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 배고픔은 단순한 허기를 넘어 여행의 피로와 뒤섞였다.
다시 지도 앱을 열어 ‘뼈다귀해장국’을 검색했다. 7~8분 거리에 ‘누리마을감자탕’이라는 식당이 있다는 정보가 떴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식당의 밝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는 밝은 조명과 사람들로 활기가 돌았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식욕을 돋웠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늦은 저녁, 한 끼를 무사히 해결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호텔로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욕조 있는 방을 예약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혼자 여행할 때면 반신욕은 늘 나만의 의식이었다. 잠자리도 편안했다. 다음 날 호미곶만 방문하면 되니 아침은 여유로웠다. 아침에도 반신욕을 즐겼다. 물을 아껴 한 번 더 몸을 담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포항의 아침은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서 ‘호캉스’라는 말이 실감 났다. 8시 45분,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호텔을 나섰다.
호미곶으로 가는 9000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자 곧 형산강이 눈에 들어왔다. 강을 건너며 현대제철과 포스코 본사 정류장을 지났다. 포스코의 거대한 간판이 도시의 정체성을 말해주었다. 버스 안 승객은 세 명뿐이었다. 해군항공사령부와 포항경주공항을 지나며 비행기가 하늘로 솟는 모습을 보았다. 포항에 공항이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동해면사무소 앞을 지났다. ‘24시 민원숍’과 ‘드라이브스루’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30분쯤 지나자 도심을 벗어나 산과 나무가 우거진 풍경이 펼쳐졌다. 구룡포 정류장에 이르자 멀리 바다가 넘실거렸다. 어선 수백 대가 정박한 포구와 파라솔이 늘어선 해수욕장이 눈을 즐겁게 했다. 바다 위 데크가 산책을 유혹했지만, 버스는 빠르게 지나갔다.
석병1리에서는 해무가 자욱했다. 꼬불꼬불한 연덕길을 버스가 힘차게 올라갔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나무, 밭, 집, 그리고 바다는 여행의 설렘을 더했다. 버스 안 승객은 대여섯 명으로 늘었다. 축사 안 소, 지붕 위 태양광, 작은 포구의 배들, 그리고 덜컹이는 버스 속에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정겹게 느껴졌다.
호미곶 행정복지센터 정류장에서 내렸다. 언덕 위 정류장에서 마을과 포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며 옹기종기 모인 집들과 간간이 보이는 빈집을 지나갔다. 해안가 정자에 올라 신발을 벗고 잠시 쉬며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대보항에 도착했다.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고, 어망을 손질하는 어부 부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거절당해 아쉬움을 삼켰다. 빨간 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등대는 언제나 마음을 끌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는, 내 삶의 방향을 돌아보게 했다.
드디어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도착했다. 7월 말의 작열하는 태양이 이마에 땀을 맺히게 했다. 광장 끝에 상생의 손이 보였다. 한반도 최동단, 일출 명소로 유명한 호미곶, ‘호랑이 꼬리’라는 이름처럼 강렬한 이곳의 상징물, 상생의 손은 바다의 오른손과 육지의 왼손이 마주 보며 화합을 상징한다. 서로 돕고 배려하며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메시지가 이곳에 담겨 있었다. 광장은 한산했다. 바다 위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 끝에 앉은 갈매기들은 마치 손톱처럼 보였다. 조형물처럼 정지한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생의 손을 바라보며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을 넘어 모두가 화합하는 세상을 그려봤다. 이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나와 세상의 연결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상생의 손 주변을 날고 있는 갈매기의 날갯짓처럼, 나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항역으로 돌아가는 9000번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갔다. 정류장에는 어르신 두 분과 관광객 두 분이 있었다. 의자에 앉은 할머니께 말을 걸었다. “할머니, 호미곶에 사세요?” “예, 평생 이 지역에서 살았어요.” 80세 가까이 되셨다는 할머니는 나이보다 젊어 보이셨다.
버스가 도착했고, 바다 쪽 창가에 앉았다. 오면서 보았던 풍경을 되새기며 잠깐씩 졸았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간판과 건물이 화려해졌다. 포항역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13시 30분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포항을 보며, 이 여정이 내게 남긴 잔잔한 여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