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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항에서 "맛있는 오후의 기억"

짧지만 강렬한 맛과 진한 추억을 남긴 임원항에서 시간

by 꿈꾸는 철이


지난주 목요일, 우리는 강원도 속초로 향하는 길에 임원항에 잠시 들렀다. 소피아, 사라, 탐, 그리고 나.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짧은 여행을 통해 서로의 빈틈을 메우곤 했다. 오후 네 시 반쯤, 가을 햇살이 아직 따뜻하게 스며들고 바다가 잔잔히 속삭이는 그곳. 부두에는 고기잡이를 마친 어선들이 천천히 정박하고, 갈매기들이 낮게 울며 그 위를 맴돌았다. 짭조름한 바다 바람이 코끝을 스치자, 마음속에 쌓인 피로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듯했다. 임원항은 그런 곳이다. 동해안의 작은 항구로, 속초의 번잡함과 달리 조용히 바다의 비밀을 간직한 마을. 그곳에서 우리는 우연히 새로운 맛을 발견했다.


횟집들이 줄지어 선 입구에 들어서자, 들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생선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구경 삼아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한 통에 빼곡히 모인 오징어들 – 갑오징어의 익숙한 몸짓 사이로, 무늬오징어가 은은한 줄무늬를 드러내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무늬오징어를 처음 봤다.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오징어의 무늬가 우리를 유혹하듯, 무늬오징어회와 소라를 주문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 물을 세팅했다. 평소의 시원한 맥주와 소주 대신, 달콤한 복분자술을 주문했다. 기다림 속에 바다가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잠시 후, 한 접시에 담긴 무늬오징어회와 소라가 도착했다. 투명한 살결이 햇살에 반짝이며, 마치 바다의 보석처럼 빛났다. 초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자, 쫄깃한 식감 사이로 은근한 단맛이 스며들었다. 바다의 짭짤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느낌 –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너무 신기해!" 소피아가 먼저 소리쳤고, 우리는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 순간, 맛있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한 입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의 증거임을 느꼈다.

복분자주를 따랐다. 잔에 스며드는 진붉은 빛이, 가을 노을처럼 아름다웠다. 소피아와 사라가 웃으며 잔을 들었고, 탐도 조용히 따라 올렸다. "건배!"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맑게 울렸다. 탐은 운전 때문에 마시지 시늉을 하며 입술에 대기만 했다. 우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탐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그 한마디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탐의 그런 배려가, 우리 사이를 더 단단히 묶어주고, 여행을 가능하게 했다. 횟집 안은 점점 포근해졌다. 씹을수록 퍼지는 바다 내음과 즐거운 대화가 우리를 감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우정이 녹아 있었다.


음식을 다 먹은 뒤,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바다로 나가기엔 시간이 아쉬웠지만, 그 여운이 충분했다. 소피아가 근처 상점에 들러 김부각 한 봉지와 황태 꾸러미를 사 들고 나왔다. 김부각 봉지를 열자 고소한 냄새가 퍼졌다. "이거 나눠 먹자. 황태는 집에 가져가서 끓여 먹어야지." 그녀의 미소에 우리는 따라 웃었다. 김부각 한 장을 베어 물자, 바다 내음이 다시 입안에 맴돌았다. 황태 꾸러미를 안은 소피아의 마음처럼, 이 작은 기억들이 우리의 추억으로 간직될 것이다.


차에 올라 창밖을 보니, 여전히 바다가 반짝였다. 임원항에서의 짧은 오후 – 쫄깃한 무늬오징어의 단맛, 향긋한 복분자주의 여운, 우리들의 웃음 섞인 대화 – 가 진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좋은 여행은 거대한 이벤트에서 오는 게 아니라, 함께 웃는 사람들, 입안에 스며드는 맛있는 음식, 그리고 바다의 속삭임 같은 소소한 순간들에서 피어난다. 그날처럼, 우리는 또 다른 오후를 꿈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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