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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이 Jul 21. 2024

한국 최초 성공회 성당, 인천내동성당에서 예배드리다.

주변에 소중한 유산들이 있다.


3주 전에 내리교회 가는 길에 성공회 인천내동성당을 봤다. 그 당시 다음 주에는 여기서 예배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지난주에 해외 갔다 오면서 토요일 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고, 주일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집에서 영상예배 드리느라 오지 못했다. 그때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지금 가고 있다. 버스 시간 맞추기 위해 빠르게 걸었다. 다행히 버스 도착 3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금은 버스 안이다.


나의 인식 속의 성공회 성당은 참 좋다. 일단 성공회대학이 사회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매스컴 통해서 여러 번 봤다. 특히, 성공회대 교수들이 우리사회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말할 때 나도 공감이 갔다. 5년 전에 일본릿교대에 갔었다. 대학 내에 성공회성당이 있었고, 그 성당에서 헌신했던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었다. 그 신부님이 일본 내에서 미치는 선한 영향력도 알게 됐다. 지금도 가끔 그분의 소식을 접하곤 한다. 성공회성당에 드리는 예배가 처음은 아니다. 릿교대의 성공회성당에서 윤동주 시인 추모예배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그때도 은혜롭게 예배드렸었다.


인천시내에서 성공회 성당을 본 것은 3주 전이 처음이었다. 나에게 성공회 성당은 익숙하다. 강화도 읍내에 있는 한옥으로 지어진 성공회 성당을 여러 번 방문했었다. 정말 멋진 예배당이다.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다. 온수리에도 한옥식 성공회 예배당이 있다. 그곳도 아담하니 아름답다.


10시 30분 예배인데 20여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교회 인근의 골목길을 둘러봤다. 홍예문 바로 위쪽 근처로 자유공원과도 가까운 거리였다.  인근에 대지가 넓고 좋아 보이는 집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과거에는 인천의 부촌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예문 바로 위에서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쪽으로는 인천내항과 월미공원이 보였고, 동쪽으로는 제물포고 일부와 인일여고가 보였다. 더 가면 자유공원이다. 예배시간 10분 전에는 예배당에 들어가기 위해 교회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성당 정문에 들어섰다. 먼저 사진을 찍었다. 왼쪽 건물이 교육관이라고 쓰여 있고, 건물 안쪽에서 찬양 소리가 들렸다. 정면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의 멋있는 건축물이 서있었다. 뒤쪽으로 멀리 빨간 벽돌 건물이 보였다. 교육관 쪽으로 들어가려는 청년에게 물었다. "예배드리려면 어디로 가야 되나요?" 가장 멋진 건물을 가리키며 그 건물로 들어가면 된다고 알려 줬다. 건물에 들어서자 안내하시는 여성분이 있었다. 나에게 인사하며 처음 뵙는다고 말을 건넸다. 몇 주 전에 지나가다가 예배드리고 싶어서 오늘 왔다고 말했다.

내동성당 예배당

예배 시간은 11시라고 했다. 코로나 때 10시 30분이었는데 밖의 예배안내 게시판을 변경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분은 나에게 비치용 성공회 성가와 기도서를 주었다. 자리를 잡고 기도를 하고 났는데도 예배 시작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남았다. 예배당 안을 둘러보고 나서, 예배당 밖으로 나갔다. 예배당 건물 뒤쪽으로 낡은 빨간 벽돌 건물이 보였다. 앞에서 가서 보니 사제관이라고 쓰여있었다. 사진을 찍고 났더니 안쪽에서 사람이 나온다. 예배드릴 때 알았는데 그분은 내동교회 신부님이셨다. 낡은 건물 안에 살림집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당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니 가까이에 감리교 내리교회 뒷모습이 보였다. 감리교 내리교회와 성공회 내동성당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지역이다. 내리(里)와 내동(洞)은 결국 같은 지명이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높은 천정은 진갈색 나무로 되어 있으며 벽도 여느 다른 교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예배가 시작된다. 성가대의 찬양과 함께 흰가운 입은 분들이 예배당의 단상 쪽에 왔다 갔다 하면서 준비 의식을 하는 듯하다. 예배 의식, 형식과 진행이 낯설었다. 다행인 것은 성가는 대부분 익숙했고 은혜로웠다. 설교도 기억에 남는다. 투우가 투우장 한쪽에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소만 아는 장소이다. 죽고 죽이는 살벌한 투우장에서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보충한다. 이곳을 스페인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한다. 퀘렌시아는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우리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안식처, 피난처가 필요하다. 우리들의,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그 순간, 그 자리가 평화를 얻는 퀘렌시아이다. 설교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설교가 끝나고 감사 성찬례가 진행되었다. 나는 참여하지 않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연세가 지긋하게 들어 보이는 분이 교회에서 세례 받지 않았냐고 물으면서 받았으면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다른 분들 뒤에 줄을 섰다. 나는 성체를 신부님께 받아서 포도주에 신 다음에 입에 넣었다. 개신교의 성찬예식과는 조금 달랐다. 그분 덕분에 성찬식에도 참여하고 감사하다. 다음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복기도 후에 교회소식을 안내하고 파송 성가를 부르며 예배가 끝났다. 성공회내동성당에서의 예배는 은혜가운데 마쳤다. 예배당에서 나오는데 출입구에 계신 신부님이 인사하셨다. 나는 악수하면 퀘렌시아라고 말하며 인사했다. 신부님도 미소로 답하셨다.



P.S. (성공회 인천내동성당)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이다. 성공회 인천내동성당은 1890년 영국성공회에서 선교사로 온 고요한 주교가 세운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이다. 처음 세워진 교회 건물은 6.25. 전쟁 때 파손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56년에 새로 지었다. 본래 이 자리에는 고요한 주교와 함께 미국에서 온 의료선교사 랜디스 박사가 1891년에 세운 인천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 있었다. 1902년 한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1921년부터 1952년까지 성공회 신학원으로도 활용되었다. 현재 건물은 기초를 철근 대신 'H'형강을 사용하였다. 건물형태는 지붕은 목조트러스 구조물이고, 외벽과 주요 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중세풍의 석조 건물로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와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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