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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Feb 19. 2023

운명은 쾅쾅쾅 문을 두드린다

[수줍은 표지 산책]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콰콰콰쾅

쾅.쾅.쾅.콰앙.


자켓 속

남자는 한껏

지휘에 취해 있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절정이다


헌데,

그 모양새가 어째

두 손을 감싸 쥐며

오열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절망이다


"운명이다"


살다가

이 한 마디를

떠올릴 때가 닥친다면

마음은 어떠할까


벗어났을 거라

굳게 믿었던

혹은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별안간

불쑥 찾아와


더 이상

도망칠 수도

부정할 수도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오이디푸스처럼

두 눈 질끈 감고 떠돌 것인가

시시포스처럼

담담히 바위를 밀어 올릴 것인가


문득,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부모 없이 자란 게 한스러웠던,

그 한을 딸에게 물려주기 싫은,

그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은

어느 이혼남이

누나와 맥주를 기울이다

담담히 뱉은 대사 한 줄이 떠오른다


"그냥 살어,

 닥치면 다 살어"


어쩌면 이보다 더

운명을 거스르는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앨범 자켓 얘기하다

핀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자켓 사진처럼



뱀발1)

이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어푸~ 어푸~"

세수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뱀발2)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진을 컨펌한 디렉터는 대단타

핀이 나간 사진을 밀어붙인 것도 대단치만

보라! 지휘자는 깜장 반팔차림이고 뒤에 관객도 없다

백퍼! 연습장면을 스케치한 사진일 것이다

저런 핀 나간, 그것도 연습장면을 찍은 사진을 앨범에 태운다고?

광고밥 20년 먹었지만 나는 도저히 팔 자신이 없다

그게 고집이든, 설득이든 부럽다. 참 부럽다


뱀발3)

기왕 안드로메다 가는 거

'나의 해방일지' 중

나의 최애 대사를 옮겨본다

개인적으로

운명이다 싶을 땐

이 대사가 떠오를 듯하다


"

살아있으니까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인 여자가 말해 줄게


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흠...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사나...

오십은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열세 살에 잠깐 낮잠 자고

딱 눈 뜬 것 같아


팔십도 나랑 똑같을 걸?


야, 원 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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