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쾅쾅쾅 문을 두드린다
[수줍은 표지 산책]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콰콰콰쾅
쾅.쾅.쾅.콰앙.
자켓 속
남자는 한껏
지휘에 취해 있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절정이다
헌데,
그 모양새가 어째
두 손을 감싸 쥐며
오열하기 직전으로 보였다
그의 표정과 몸짓은
절망이다
"운명이다"
살다가
이 한 마디를
떠올릴 때가 닥친다면
마음은 어떠할까
벗어났을 거라
굳게 믿었던
혹은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별안간
불쑥 찾아와
더 이상
도망칠 수도
부정할 수도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오이디푸스처럼
두 눈 질끈 감고 떠돌 것인가
시시포스처럼
담담히 바위를 밀어 올릴 것인가
문득,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부모 없이 자란 게 한스러웠던,
그 한을 딸에게 물려주기 싫은,
그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은
어느 이혼남이
누나와 맥주를 기울이다
담담히 뱉은 대사 한 줄이 떠오른다
"그냥 살어,
닥치면 다 살어"
어쩌면 이보다 더
운명을 거스르는
말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
앨범 자켓 얘기하다
핀이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자켓 사진처럼
뱀발1)
이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어푸~ 어푸~"
세수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뱀발2)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진을 컨펌한 디렉터는 대단타
핀이 나간 사진을 밀어붙인 것도 대단치만
보라! 지휘자는 깜장 반팔차림이고 뒤에 관객도 없다
백퍼! 연습장면을 스케치한 사진일 것이다
저런 핀 나간, 그것도 연습장면을 찍은 사진을 앨범에 태운다고?
광고밥 20년 먹었지만 나는 도저히 팔 자신이 없다
그게 고집이든, 설득이든 부럽다. 참 부럽다
뱀발3)
기왕 안드로메다 가는 거
'나의 해방일지' 중
나의 최애 대사를 옮겨본다
개인적으로
운명이다 싶을 땐
이 대사가 떠오를 듯하다
"
살아있으니까 산다 싶은
우물우물 여물 먹는 동물인
오십인 여자가 말해 줄게
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는데
흠...
서른이면 멋질 줄 알았는데
꽝이었고
마흔은 어떻게 사나...
오십은 살아 뭐하나...
죽어야지... 그랬는데
오십?
똑같아
오십은 그렇게 갑자기 진짜로 와
난 열세 살에 잠깐 낮잠 자고
딱 눈 뜬 것 같아
팔십도 나랑 똑같을 걸?
야, 원 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