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수줍은 표지 산책]
참 멋진 제목이나
멋지게 보이긴
참 힘든 제목이다
우선 제목의 길이가 너무 길다
이런 긴 문장은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도
자세 나오기가 힘들다
제목계의 문제아이면서
레이아웃계의 아웃감이다
그래서인지
디자이너의 갖은 노력이 엿보인다
길고 긴 제목과 지은이 출판사 로고를
우측에 정렬했다
거기에 제목은 가로로 눕혀
세로로 주욱 늘어뜨렸다
이미지적인 리듬감을 주기 위해
배치도 폰트크기도 다르게 주었다
그 위에는 검정 박스를 치고
지은이 이름을 가두었고
맨 아래에는 출판사 로고를 배치했다
제목, 지은이, 출판사 로고 각각 따로 논다
거기에 폰트크기 또한 고만고만하다
눈에 확 띄기 힘들다
제목만으론 임팩트를 주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나 보다
왼쪽에는 시인의
모노톤 사진이 큼지막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 사진은 작가도 자신인지 알아보기 힘들어 뵌다
오히려 책제목이 '이상시선집'이었음 더 어울렸을 수도 있겠다
요즘 작가인데도 모던보이 내음이 물씬 풍긴다
거기에 멋을 더 보태고 싶어서인지
읽히지도 않는 문장들을 이미지 사이사이에 수놓았다
뭐랄까 출판 당시의 북디자인 트렌드를
잘 반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짙게 느껴진다
개정판에서는
'이성복 아포리즘'을 도드라지게
'책제목'은 상대적으로 작게 레이아웃했다
전체적으로 한 가지 폰트를 쓰고
세로쓰기로 통일하였다
이미지도 과감히 없애
전보다 꽤 심플해졌다
이성복의 고통은 비록 나뭇잎 한 장 푸르게 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디자이너의 얼굴만큼은 시뻘겋게 물들였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