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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순 Feb 24. 2023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2

[수줍은 표지 산책]

어렸을 땐 책제목을

'웬만한 고통 가지곤 나뭇잎 하나 푸르게 만들 수 없다'라고 해석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나뭇잎이 푸르러질 수 있을까?'

늘 남보다 낮디낮은 고통경험치를 부끄러워했다.

특히 '고통경연대회'같았던 문창과 합평수업에선 더더욱 심했다.

비극적 가족사도 절망적 연애담도 쟁여 놓지 못했기에

수업시간 대부분 열등생의 마음으로 보냈다.

누군가의 까맣게 그을린 고통의 흔적들이 훈장처럼 빛나 보였다.

시한부 인생 정도는 살아줘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줄도 모르고.

마냥 고통스러웠음 싶었다. 나뭇잎이 푸르러질 때까지.


근데 말이지 그런 마음도 바뀌더라

얼마 전 아주 오랜만에 이 책을 집었을 때 든 생각은

'내 고통과 나뭇잎이 뭔 상관이지?'

'내가 왜 굳이 고통스러워야 하는데?'

정말이지 사람이 이리 달라질 줄 몰랐다.

세상 쓴 맛과 세 탓이리라.

단순하고 당연해진 내가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더 나이 든 나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문득 넘긴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언젠가,

생물학적 쓸모도 바닥나고

생산적인 쓸모도 없어진

세상의 완벽한 잉여가 되어

자연스레 선 밖으로 밀려날

날을 위해


나의 멸망의 시간들을

맥박재듯 명징하게 체크하고

세상 가장 추레한 해방감을

세상 가장 달게 만끽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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