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표지 산책] 영화 타르 포스터
처음이었다
포스터에 끌려 극장을 찾았다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도 몰랐다
얼추 시간도 맞고
전단지라도 한 장 얻을까 싶어
회사 근처의 극장으로 향했다
전단지는 없었다
아예 안 찍었는지
인기가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전단지를 진열하는 부스에
비어있는 곳조차 없는 걸로 보아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건 확실해 보였다
평소엔 미련 남기는 편이 아닌데
요상하게 요건 욕심나더라
영화를 본 후 포스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물론, 그 생각은 영화를 다 보고 집에 도착할 즈음 떠올랐다
게다가 영화 내내 졸았다
재미없어서라기보다, 그때 내 상태가 그랬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래도 갖고 싶었다
방법을 생각해 보다 팀 아트 디렉터에게 부탁해
회사 프린터로 뽑으면 어떨까 싶었다
개인적인 부탁받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개인적인 부탁하는 것 또한 꺼리는 편인데
이건 그 정도로 욕심이 났다
상사의 철없는 부탁에
아트디렉터는 한 술 더 떠
보드지에 예쁘게 붙여주기까지 했다
회사 사람과 회사 자산으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운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괜스레... 뿌듯했다
내 존재 자체가 회사의 손해이기에
이 정도 손해는 티도 안 날 것이다
내 사리사욕에 희생된 아트님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고개를 젖힌 채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서 있는
누군가가 보인다
극단적 로우 앵글이어서
배우의 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가슴을 있는 힘껏 펼친 탓에
성별조차 모호해 보인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가늘고 긴 막대로 미루어 보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일 듯하다
두 팔의 격렬한 떨림과
상반신 외에는 어둠에 가려있어
얼핏 보면 날갯짓하는 '새'처럼 보인다
아니지,
저리 힘을 꽉 쥐고 나는 새는 없을 것이다
달리보니
'비상'이 아닌 '추락'으로도 보인다
그것도 시커먼 어둠 속에서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끝없는 추락
'희열'로도 보이고
'분노'로도 보인다
'절정'으로도 읽히고
'절망'으로도 읽힌다
다분히 의도된 앵글도 인상적이지만
그림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침범한 글자들도 멋지다
격렬한 이미지를 방해하지 않으려
감성적인 카피를 버리고
꼭 필요한 정보들만 추려 한 곳에 모았다
특히나 A 위에 찍힌 점은 화룡점정이다
저거 없었으면 꽤나 답답해 보였을 듯하다
저 레이아웃을 지키기 위해
아트디렉터는 얼마나 싸웠을까
여러모로
간만에 묘했고
간만에 낚였다
그것도 포스터 한 장에
부러웠다
나도 저리 낚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