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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Dec 25. 2023

[Review] 생명을 위한 땅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해나무, 2023)을 읽고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죽어야 할까


“쾅!!”

지루한 공기가 맴도는 어느 오후였다. 조용한 사무실을 울리는 소리에 모두가 일제히 일어나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나도 놀라, 모두가 바라보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새네.”

“네?”

“새라고요. 새들이 종종 저 창문에 부딪혀요.”

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타 부서의 동료분은 몇 번 겪어본 일이라는 듯 말씀하셨다. 한쪽 면 삼분의 이가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는 사옥의 건물에 새들이 부딪히는 일이 잦고, 대게 죽는다고. 한 생명체의 죽음이 발생하는 순간, 누군가는 그 죽음이 간간이 벌어지는 일이라 말했다. 다른 이들은 어쩌냐, 하다가 이내 다시 본인의 업무로 돌아갔다. 이내 다시 조용해진 사무실의 공기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한 생명체의 죽음이, 적어도 인간이 아닌 존재의 죽음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 일은 인간이,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죽음’ 앞에 얼마나 무감각한지 어렴풋이 감각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다른 생명체의 죽음과 지구가 보내는 여러 신호 앞에 흐린 눈을 하고 살아왔구나, 자각하게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조금씩 환경에 관한 기사,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느끼게 된 점이 있다. 매일 아침, 팟캐스트로 듣는 뉴스에 ‘환경’ 이슈가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환경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는 평소 보는 다른 콘텐츠에 비해 조회 수가 ‘현저히’ 낮았다. 직접 찾아보면서 그간은 보이지 않았던 환경에 관한 많은 이슈는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이 이슈들은 대체로 뉴스와 콘텐츠 홍수 속에서 메인보다는 변두리에 위치한 듯했다.

이렇게 환경 문제보다 다른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는 듯한, 이미 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소수인 우리 사회. 이 사회에서도 지금 이 환경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없다고, 이 문제에도 우리가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 중 한 명인 최평순 환경‧생태 전문 PD의 목소리를 담은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해나무)을 읽었다. 




“기후 위기는 더 심각해졌고, 금방 종식될 줄 알았던 전염병은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플라스틱을 비롯한 포장재 소비는 늘었다. 그런데도 인간의 지구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은 답답한 수준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지구적 문제 앞에서 갈라파고스라도 되는 양 사회 분위기가 무덤덤하다.”(8쪽)

“기후 관련 소식은 국제회의라는 이벤트나 사상 초유의 재난이 발생하는 정도는 되어야 뉴스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았다.”(105쪽)


이 책에서는 내가 느낀 세상에서(특히 우리나라에서)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다루는 것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오랜 시간동안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취재하며 더욱 이러한 현실에 관해 느꼈을 저자는 우리나라가 현재 환경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에 있어 모두가 ‘흐린 눈’을 하고 현실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우리가 변해야 할 시간


이미 인간은 “지난 46억 년이라는 지구의 시간을 고작 1950년대 이후 70년 동안 본격적으로 망쳐놓았(248쪽)다. 이 책은 인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구와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저지른 일, 그로 인한 변화에 무관심한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았다.

앞서 언급한 건물에 부딪혀 죽는 새(조류 충돌)들은 우리나라에서만 하루 2만여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국립생태원에서는 2018년 연간 800만 마리의 죽음이 일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새들은 건물의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을 경로의 방해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아가던 속도로 부딪히는데, 다쳐도 부상으로 인해 다른 천적의 먹잇감이 되거나 대부분은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죽음을 막기 위해 ‘조류 유리창 충돌 저감 장치’를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고 이를 시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기에 막상 실천하는 곳은 거의 없다.

책에서 다루는 또 다른 죽음이 있다. 돌고래 ‘상괭이’의 죽음이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그물을 이용한 어업으로 인해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아진 상괭이의 죽음은 인간의 도 넘은 불법 어업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 연구 목적으로 상괭이의 사체를 모아 놓은 현장 사진을 보았다. 이 사진 속의 생명들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그들이 살던 바닷속이 아닌 찬 땅 위에 놓여 있었다.

새와 상괭이뿐만이 아니다. 꿀벌, 기번(유인원 중 한 종), 그 외의 많은 동물은 인간이 살 땅을 마련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벌이는 일들에 먹고살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 모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라고.


‘인류세’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기후와 생태계가 변화한 지질 시대를 의미하며, 생물다양성이 없어지고 동물종의 멸종이 두드러지게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의 심각성을 말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인류세는 단 세 글자로 지금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와 다른 생물종을 대멸종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마법의 단어다.”(17쪽)


유례없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 환경에 따라 미래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고, 사실상 지금 당장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면 긍정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고,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한다. ‘지구 온도 1.5도’는 전 세계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산업화 이전 시대 대비 지구의 온도가 1.5도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향후 10년 내 1.5도를 넘어버릴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일은 모두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지난 3년간 국내외에서 벌어졌던 각종 팬데믹과 기후재난에 관한 소식을 잠시 떠올려봐도 그렇다. 야생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진 탓에 예측할 수 없었던 감염병의 위험에 전 세계가 패닉 상황에 빠졌다. 산불, 쓰나미 등의 기후 재난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환경 파괴를 가져왔다.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결국 인간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인간 모두에게 닥치진 일이다. 당장 코 밑까지 물이 차올랐는데,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환경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턱까지 차오른 물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모두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거니즘, 제로플라스틱 운동을 비롯하여 일상 속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들이 분명 일어나고 있다. 과거 ‘유별’나게 보였던 움직임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지구를 위한 행동으로 존중하는 마음과 시선이 있다. 지구의 빠른 변화에 비해 인간의 깨달음과 실천이 더뎌 보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 책만 들여다보더라도 세상 곳곳에는 인간이 아닌 크고 작은 생명들의 생과 사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촉구하는 단단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연구하고 기록하며 변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길 바란다. 내가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혹은 보이지 않아서 몰랐던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창문에 거세게 부딪혀 죽음을 맞이한 그 새는 사옥 근처 하천 옆에 두었다 전해 들었다. 그날 저녁, 쌀쌀한 퇴근길에 그 새를 생각하며 앞으로 인간의 영향으로 다른 생명체가 생을 마감하는 일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동시에 인간이 앞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벽에 부딪히는 것은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감각을 품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때의 감각을 선연히 떠올렸다. 지금 ‘이대로’라면 인간을 위한 땅은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환경에 무해한 인간들의 움직임이 점차 커진다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조금은 더 늘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 우리 다음으로 살아갈 인류와 생명체를 위해, 앞으로 지구를 위한 목소리를 내는데 기꺼이 목소리 내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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