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못하는 미세스 피스풀은 왜 앞치마에 집착할까?

미세스 피스풀 J와 집의 시간

by 미세스 피스풀

모두들,

집안일 시작하기 전에 꼭 지키는 루틴 있으세요? 
저는 빈 속에 쪼로록 마시는 모닝 라떼를 좋아해요. 


조잘조잘 새처럼 지저귀는 아이가 등원하고 난 아침은 마치 생기가 빨려나간 흑백의 화면처럼 고요합니다. 멍하니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고 커피 캡슐도 하나 꺼냅니다. 커피 머신의 보일러가 예열되기를 기다리면서 팬트리를 뒤져서 달콤한 디저트도 준비합니다.

쉬익—식, 소리와 함께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공기 중에 번지면 차가운 우유를 부어 모닝 라떼를 만듭니다. 나를 위한 낭만이나 호사를 챙기고 싶은 날에는 비알레띠의 수동 거품기로 차가운 밀크 스팀을 만들어 라떼 위에 얹어요. 손잡이를 잡고 우유 속에 공기를 밀어 넣듯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면, 비알레띠 특유의 묵직하고 쫀득한 거품이 만들어집니다. 아침은 안 먹어도 괜찮지만 모닝 라떼와 달콤한 디저트를 건너뛰면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느낌이 들어요. 마치 서랍 속이 엉망진창인데 공부를 해야 하는 수험생이 된 기분이에요. 책을 펼치고서도 계속 서랍 속을 신경 쓰다가 결국은 뒤집어 정리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지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아요.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홀짝이며 호두과자 속을 꽉 채운 팥소를 야금야금 먹다 보면 비로소 세상이 컬러로 전환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누리는 집의 시간은 평화롭고 충만해서 더 짧게 느껴지지만 이런 ‘멍상’ —명상이 아니라 멍하니 있는 상념의 시간— 이 길어지면 빈둥거리다 하루를 낭비할 수 있기 때문에 집의 시간을 오롯이 누렸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앞치마를 맵니다.


사실 저는 살림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어느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낯선 시선으로 집안을 마주했더니 갑자기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더라고요. 주방엔 설거지할 그릇들이, 거실엔 미처 개지 못한 빨래가 기다리고 있는 현실의 아침 풍경을 마주하며 절로 탄식이 나왔어요.


저를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해 준 20대 직업인의 시절, 저의 세상은 편집부 안의 작은 책상 하나가 전부였어요. 높은 파티션이 둘러진 커다란 책상과 컴퓨터, 글의 도입부가 마음처럼 써지지 않을 때 도움을 받으려고 모아둔 책과 사진집, 촬영 다니며 하나둘씩 산 소소하지만 값비싸고 용도가 불분명한 물건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는, 정신없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세상이었죠. 지금은 삶의 중심이 아이로, 집으로 확장되면서 모든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달라졌어요. 하지만 예전처럼 나의 일을 내가 장악하고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거예요.
사회 초년생 일을 배우던 시절처럼 나만의 살림 사수가 필요한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이후 사람들의 하루 루틴에 굉장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의도적으로 앞치마를 매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어요.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에 앞치마의 허리끈을 묶는 순간이면 집안의 느슨했던 공기가 마치 긴장감을 되찾는 느낌을 받아요. 편집부 시절 원고 마감 전에 꼭 책상 정리를 하던 ‘나만의 시작 의식’이 앞치마로 연장된 거죠.

게다가 앞치마를 입으면 좀 더러워져도 괜찮아, 물이 튀어도 괜찮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집안일을 하게 되고, 예쁜 앞치마를 입으면 다른 사람이 봐주지 않아도 제일 중요한 내 기분이 좋아져요. 그 사소한 차이가 하루의 분위기와 효율을 바꿔놓곤 하지요. 
아직도 가끔—아니, 종종—요리며 청소며 모든 집안일이 귀찮아질 때면 『줄리 앤 줄리아』의 메릴 스트립을 보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깨끗하게 다림질한 셔츠 위에 우아한 진주목걸이를 하고 앞치마 허리끈에 리넨 클로스를 툭 걸친 채 요리하는 모습은 참 곱고 행복해 보여요.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메릴 스트립. 진주 목걸이에 셔츠, 앞치마 입은 목습이 참 고와요.


그래서 정말 예쁜 앞치마를 만들고 싶었어요.

집의 시간이 행복하면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 같아요. 살림과 육아, 일 사이에서 공 하나를 받으면 또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곤 하지만, 언젠가는 균형을 잡을 수 있겠죠.


미세스 피스풀들의 하루 루틴 속에서 무언가가 나를 다시 중심에 세워주는 순간이 있다면, 그 하루는 분명 달라질 거예요. 피스풀의 앞치마가, 그 순간을 함께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스풀의 앞치마를 입는 일이 미세스 피스풀들의 집안일 루틴의 하나로 자리 잡는 그날을 기대해요.

Love Piecefull Life!



미세스 피스풀 J,살림과 육아, 일을 저글링하며 하루를 굴려가는 82년생입니다. 감성을 논리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미적 직관이란 평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나의 삶의 장면을 언어로 설계하는 일을 즐거워합니다. 인테리어 매거진의 에디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