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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정 Feb 20. 2023

알밤과 외삼촌

가족을 잃는다는 건


그날은 하늘이 유독 파랬다. 본래 맑고 청량한 가을하늘이라지만, 그날 하늘색의 채도나 명암은 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뭐랄까, 파랑과 보라를 적당히 섞어 화창하면서도 창백한 느낌을 주는 그런 하늘. 그래서 안성에 도착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 말고 나는 한참이나 하늘을 쳐다봤다. 엄마와 딸을 한 차에 태우고 외조부모님은 한 분도 안 계시는,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엄마는 요 며칠 전부터 외갓집에 밤을 주우러 가야 한다고 성화였다. 깊은 산골에 있는 외갓집 주변에는 밤나무가 가득했고 가을이면 입을 입을 떡떡 벌린 밤송이가 후드득 떨어져 누군가는 부지런히 알밤을 주워야 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알뜰살뜰 밤을 줍는 건 외할아버지였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퇴직 후 본가에 내려가 있는 큰 외삼촌이 혼자 밤을 주웠다. 엄마는 외삼촌 혼자 밤을 줍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지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오자며 나를 앞장세운 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안성에선 마침 오일장이 열렸다. 엄마는 외삼촌 좋아하는 닭도 한 마리 튀기고, 손녀딸 좋아하는 설탕 꽈배기도 샀다. 국산인지 아닌지 깐깐하게 따져 도라지도 한 봉 샀는데 훗날 이 도라지 한 봉 때문에 두고두고 눈가를 적시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이것저것 먹을 걸 챙겨 외갓집에 갔더니 역시나 동생 생각에 한 솥 가득 닭도리탕을 끓여온 이모도 와 계셨다. 그렇게 모인 식구들이 밤 밭에서 한창 고군분투 중인 큰 외삼촌을 찾아갔다. 목 긴 장화에 낚시 조끼 차림으로 허리를 굽혀 밤을 줍던 큰 외삼촌은 뜻밖의 손님이 반가웠던지 소년처럼 웃었다. 밤 밭 한가운데는 어설프게 지어진 원두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 원두막에 걸터앉아 나눠 먹는 닭도리탕은 꿀맛이 따로 없었다. 포슬포슬한 감자며, 야들야들한 닭다리, 압력 밥솥의 실력이 분명한 찰진 밥까지. 이만해도 진미일미가 따로 없지만 여기에 잘 익은 파김치와 달큰한 무말랭이 무침까지 거들었으니 이만하면 완벽한 소풍 도시락이었다. 이모의 음식솜씨는 원래도 뛰어났지만, 이날은 야외에서, 여럿이 둘러 앉아 즐겼기 때문인지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그렇게 거한 만찬을 즐긴 뒤에는 즐거운 육체 노동이 이어졌다. 여기저기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미 떨어져 있든지, 지금 막 떨어졌든지 하는 밤들을 쏙쏙 골라 주워담는 일인데 몇 년 전 등 위에 밤송이가 떨어져 한 동안 연고를 발랐던 추억도 있고, 눈치 없이 나타난 뱀 때문에 기절초풍하며 산을 뛰어내려갔던 기억도 난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 열심히 밤을 주워 담고 있던 그때, 평소 이렇다 말이 없던 외삼촌이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혜정아 내가 밤 잘 줍는 법을 알려줄까? 밤이 보이면 바로 주워야지 이따 줍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더라. 어디 있는 줄 아니까 금방 다시 주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다시 돌아와보면 꼭 있을 것 같던 밤이 없어. 그러니까 그때 그때 눈에 보이는 밤을 주워 담으면 돼” 마치 유치원 아이를 가르치듯, 차근차근 또박또박 이런 말을 남기던 외삼촌은 너희 시댁 어른들에게 줄 밤을 좀 챙겨야겠다고 옆 산으로 가버렸다. 옆 산이 좀 험하긴 해도 밤이 훨씬 굵고 반들반들 좋다던 외삼촌이었다. 그렇게 외삼촌이 땀으로 러닝셔츠를 다 적셔가며 따온 밤으로 그 밤 나는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외삼촌이 뇌졸증으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은 그 날로부터 일주일 뒤에 날아들었다. 평소처럼 밤을 줍던 외삼촌은 갑자기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실려갔고 영영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거짓말처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곁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유난히 하늘이 좋던 그 날이 외삼촌과 나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셈이다. 나중에 전해들은 얘긴데, 엄마가 외갓집에 도라지 봉지를 그냥 두고 가는 바람에 꼭 이틀 뒤 외삼촌이 집(친정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빠 엄마 모두 출근을 했던 터라 외삼촌은 도라지 봉지며 시골서 마련한 채소 봉지를 그냥 문고리에 걸어두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일을 떠올리며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날로부터 4일 뒤 외삼촌이 잘못됐으니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던 기회를 날렸다는 얘기다. 

어찌됐든 모두의 아쉬움 속에 외삼촌은 떠났고, 다른 식구들 모두 이제 그의 부재를 익숙하게 여기는 눈치다. 대단한 추억이나 정을 나눈 적이 없으니 나 역시 하루하루 외삼촌을 잊어가는데, 그럼에도 밤을 줍던 그 날, 나에게 해준 다정한 말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진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알밤이 다시 찾아가면 없더라는 말. 그러니 그때 그때 보이는 밤을 놓치지 말고 주워 담으라는 말이 어쩐지 여러 의미로 와 닿기 때문인데 밤이 사람 같기도 하고 시간 같기도 해서 아프다. 

몸이 크게 아프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어떤 형태로든 큰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늘 ‘나중’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나중에, 이따가, 다음에 같은 말로 자꾸 유보하듯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나중으로 미뤄도 될 것 같던 그 소소한 일상들이 결국 삶의 전부고 행복이었다는 뉘우침이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맥락의 크고 작은 후회를 나도 꽤 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잊고 ‘다음에 보지 뭐’ ‘이따가 연락하지 뭐‘ ‘내일 놀아주지 뭐’ 같은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또 먹는다. 

오비이락을 두고 너무 과한 의미부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만 외삼촌이 이런 나의 망각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행복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고. 다음을 기약하기엔 앞날은 너무 알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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