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무리 익숙한 곳이라도 몇 발짝 멀리서 바라보면, 그 안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보일 때가 있다. 타국에 나와 있으니, 집을 떠나 서울에서 지낼 때보다 고향에 대한 생각도 자주 떠오르곤 한다.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비교적 최근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그곳에서의 어릴 적 기억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좋았던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만큼의 마음속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라온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다. 어릴 적 가장 가까운 근처 이웃집을 방문하려면 적어도 걸어서 15분 이상은 걸렸던 듯싶다. 놀이방, 영화관 같은 시설은 없어도, 우리는 방 안에서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걸 더 좋아했다.
흙과 물을 적당히 섞어 만든 진흙은 곧 돌 식탁 위의 밥이 되었고, 들풀을 찧어 만든 반찬은 녹색 채소반찬으로 상 위에 올라왔다. 가끔 꽃잎까지 얹어 놓으면 진수성찬이 되곤 했다. 냠냠냠 소리를 내며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떤 때에는 실수로 진흙이 입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가끔 즐겨하던 놀이 중 또 하나는 패션쇼 놀이였다. 부모님이 밭에 일하러 나가시면 방에서는 우리 세 자매의 패션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의 옷장을 뒤져서 가장 괴상하게 옷을 조합하여 입는 놀이였다. 촌스러워 보이는 옷을 고른다든가, 겨울 목도리와 여름 민소매 옷을 동시에 입는다든가, 어쨌든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으로 입으려고 애를 썼다. 햇빛이 내리쬐는 여름 밭에서 일하고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 셋 중에 누가 제일 멋지게 입었는지 평가를 구하면,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나오거나 전부 괴상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부모님은 한바탕 웃으시곤 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꽃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우리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 온통 꽃밭이다.
조금 떨어진 시공간에서 바라보니 한없이 그립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다.
알렉산드로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가 떠오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훗날 돌아본다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