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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으며 살아온 삶은 맞는 것일까

썩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by 이 희

학창 시절 만족스럽지 못한 시험 성적을 받았을 때, 지원한 회사에서 불합격 문자를 받던 순간, 맡은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해서, 또는 점심시간 메뉴 고르기에 실패해서, ...


크고 작게 낙담했던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두려웠던 건 내가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오던 인생이 혹시 잘못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감에 휩싸였을 때였다. 문제가 추상적인 만큼 생각 또한 바닥에 쏟아진 물처럼 경계가 모호하고 제멋대로였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처럼 외우며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니 세상은 나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고 있었다.


입사지원서에 나 자신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묘사했고, 실제로도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 어디 그렇게 예쁘고 아름답기만 할까. 착하게 살면 누군가는 나를 만만하게 보고,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지고, 누군가에게 이쁨을 받으면 누군가에겐 질투를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루는, 자취방에 오랜만에 오신 어머니를 반기지도 못하고 상사의 요구로 함께 불필요한 야근을 해야 했다. 새벽 5시에 퇴근하고 들어간 자취방, 이미 차갑게 식은 저녁상 옆에는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형광등을 켜놓은 채 쭈그리고 잠들어 계셨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시더니, “5시? 이게 뭐 하는 거야?”라며 걱정 가득한 말을 듣는 순간, ‘그러게,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요즘 소위 말하는 90년대생들이 회사에 새로 들어오면서, 회사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기 싫은 것에 대해 "NO"라고 말했으며, 원하는 것에 대해 당당하게 말할 줄 알았다. 나 또한 90년대생이지만, 착하게 보여야 한다는 마음에 상사들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왔다. 나와는 다른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해야 조직문화가 변화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른들에게 젊은 세대의 방식만이 옳다고 한순간에 변화하라며 강요할 수는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감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는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는 조직의 위계질서를 지키려는 세대와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세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끼어있었다.


생각의 시작은 이러한 계기였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내 기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건 좋은 것, 저건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양쪽으로 명확하게 나누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누구의 행동이 맞다고 해야 할까?

양쪽 모두를 이해하면서 어느 한쪽만의 입장에 서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이런 혼란 속에서 한쪽을 선택해 자신의 주관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건 맞는 건가?


이 모든 질문들이 어쩌면 ‘탕수육은 부먹이 나을까, 찍먹이 나을까’하는 고민과 같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이 많아져 결국 첫 번째 직장에서 퇴사하고 유학을 떠났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하고 도피한 나는 실패했다고 봐야 할까? 내면은 꾸준히 고민하고 성장하고 있는데...?!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그렇지 못한 것이 되는 것처럼, 남들이 실패라고 보는 내 모습이 어쩌면 성공으로 가고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실패, 성공’이라고 구분 지어 말하기도 이상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내가 맞게 살아가고 있나 고민하는 내게,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비유하며 말씀하셨다.

고뇌는 거름이다. 거름이 썩지 않으면 작물이 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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