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글남 Sep 25. 2019

우리가 발산해야 하는 것은 열기가 아닌 냉기다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세상을 바꾼다

정상을 오르려면 그냥 케이블카를 타자


여든넷의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대개 입맛이 없는 날이 많으셔서 많은 것을 드시지 못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게, 맛있는 집을 골라야 하고, 걷는 게 불편하시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는 관광지는 피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방 여행을 하노라면 부득이하게 '동산' 정도로 불릴만한 곳에 가게 되는데 그런 곳은 꼭 정상에 도착해야 주 볼거리가 있다. 물론, 정상까지 걸어가는 과정은 운동 효과와 소소한 볼거리들을 선사한다. 그치만 할머니의 무릎 건강과 부모님과 할머니의 체력 안배를 위해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관광지를 돌아야 한다. 그래서 케이블카 혹은 코끼리 열차 따위의 이동 수단들이 있는 곳을 조사하여 간다. 정상에 올라 바라볼 경관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선택적으로 포기하고 바로 케이블카를 타기로 한다. 

윤리적 소비는 누군가에게는 도움받을 기회의 상실이다


'윤리적 소비'라는 것이 한창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노동착취 공장의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씩 일주일 내내 일하기도 하고, 식사 및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안전 수칙은 공장 앞을 지나가는 들개에게 줘버렸다. 종종 고용주의 학대 행위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당연히 저렴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매를 한다. 그러고는 조금 비싸더라도 노동자를 온전히 대우해주는 공장의 물건을 산다. 좋다. 그럼 이제 당신이 예전에 혹은 방금 한 선택이 몇 명을 실직시키고, 넝마주이 등 공장보다 더 열악한 환경의 일자리로 내몰았고, 그래서 결국 몇 가정이나 굶어 죽게 만들었는지 생각을 해보자. 

한편 방글라데시 노동착취 공장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은 2달러, 캄보디아는 5.5달러, 아이티는 7달러, 인도는 8달러이다. 터무니없는 저임이지만 현지 하청공장 일당이 1.25달러임을 감안하면 노동착취 공장으로 몰리는 것도 당연하다. 선진국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추방 위험을 무릎쓰면서가지 열악한 노동착취 공장에서 일하려는 걸까?
 - <냉정한 이타주의자> 184page -
(전략) 유니세프 조사 결과 해고당한 미성년 의류 노동자 다수가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길거리 사기단, 성매매 등에 내몰린 사례까지 있었다.
 - <냉정한 이타주의자> 185page -


이와 같은 맥락으로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공정무역'은 효과가 있을까? 전혀 아니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소의 크리스토퍼 크래머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4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공정무역은 농촌 극빈층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데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당신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고, 그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시키고 싶다면 노동착취 공장의 물건을 더 많이 사주고, 싸게 산 만큼 기부를 하라. 뭔가 납득이 가지 않고,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불편한 진실이고 기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자가 되는 방법이다. 기부를 하건 물건을 사건 당신의 돈이 쓰였다는 것은 다른 곳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기회를 잃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때문에 주어진 자원으로 타인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미래의 영향력을 기준으로 직업을 바라보자


모두가 이타주의가자 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타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부디 냉정해지길 바란다. 열정은 식기 마련이고 이후에 행동을 이끄는 것은 차디찬 냉정이다. 냉정한 사고만이 효율적 이타주의자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의 문제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직업 선택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직업을 통해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에는 3가지 경로가 있다.


1.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단체에서 근무하는 것

2. 돈을 잘 버는 직장에 취직하여 기부금을 많이 내는 것

3. 역량, 인맥, 자격 등 경력 자본을 쌓는 것


가장 큰 인사이트를 얻은 부분은 세 번째 경로인 경력 자본을 쌓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영향력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단번에 즉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마법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지니게 될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절대 바꿀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사생결단의 각오로 진로를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직업은 미래의 영향력의 극대화를 위한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조직운영, 판매 및 마케팅, 프로젝트 관리, 비지니스 지식, 대인관계 기술, 주도력, 직업의식 등은 모든 영역에서 키울 수 있고, 동시에 발휘될 수 있는 역량이다. 

 진로를 린하게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 선택한 직업과 자신의 적합성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직업 선택에 대한 '실패'는 자신이 추후 직업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를 파악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리고 경력을 통해 쌓아온 경력 자본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해당 분야의 영향력을 독식하는 위치로 올라갈 수 있고, 그때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효율적인 이타주의자가 되는 순간이다.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은 엔진이 돌아가며 발생한 열이 아니라, 내부 공간에 제공되는 냉기다. 개인적인 목표 혹은 문제 해결을 위한 야망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엔진처럼 뜨거워진 우리들이 세상에 발산해야 하는 것은 열기가 아닌 냉기이다. 


고로, 냉정한 이타주의자가 세상을 바꾼다. 


작가의 이전글 로또 2등에 당첨된 당신, 당장 복권집으로 다시 가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