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잡스 박재민 해설위원의 이야기
좋아하는 분야를 잘 알고, 또 곧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가끔은 좋아하니까 저 정도 아는 건, 해내는 건 당연한 거구나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단편적인 결론이 누군가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잘하는 일을 다 좋아할 수는 없듯 좋아하는 일도 다 잘하라는 법은 없다. 좋아하는 만큼 애정과 노력을 쏟아부은 덕에 잘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이번 주 유퀴즈에는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빛낸 이들이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스노보드 박재민 해설 위원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닿았다. 박명수에 이어 또 다른 '십잡스' 박재민 해설 위원. 그의 이야기와 함께 내 생각을 좀 덧붙여보고자 한다.
그는 올림픽 중계를 위해 자신이 맡은 종목의 모든 선수들을 살펴보았다. 정리한 내용은 A4용지로 오백 장이 넘는 분량. 읽고 밑줄 치고 번역까지 해가며 올림픽의 주인공인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전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것. 그는 말한다. “250명의 선수의 250개의 드라마”라고.
올림픽의 주인공들을 더 주인공답게 만들어준 A4용지 506장에 담긴 그의 노력과 스노보드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존중. 이 모든 것들이 올림픽을 올림픽답게 만들어준 값진 해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주고 싶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경력 단절로 많은 것들을 포기한 여성들. 평행대회전 종목에서도 출산 후 은퇴한 선수가 있었다. 그 선수는 이번 올림픽에 복귀해 동메달을 땄다. “본인 커리어 최고의 무대를 10대, 20대도 아닌 지금 2022년에 만들어냈다.” 박재민 해설 위원은 말한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박재민 해설 위원의 중계로 그 선수의 동메달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또, 많은 이들은 이 장면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이름도 잘 모르던 외국 선수의 노력과 성취의 서사가 이렇게까지 와닿은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재밌게 본 경기가 바로 슬로프 스타일 경기였다. 박재민 해설 위원의 TMI 해설은 보는 내내 몰입도를 높여줬다. 아무리 봐도 몇 바퀴를 회전한 건지 헷갈리던 찰나 ‘등-배-등-배’ 이 공식 하나로 나를 스노보드를 꽤나 잘 아는 사람처럼 만들어줬다. 덕분에 보는 즐거움은 배가 됐다. 선수 한 명 한 명의 사사로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올림픽 선수들도 선수이기 이전에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켜켜이 쌓아온 그 서사가 전해졌다. 이내 마지막 선수가 경기를 펼치고, 금메달의 주인공이 바뀌며,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껴안았을 때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경력 폭은 상당히 넓다. 해설 위원, 배우, 교수, 번역가, 방송인, 운동선수, 심판, 댄서 등. 그의 발자취를 찾아보면 다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또 깊다. 이런 그를 ‘다양한 분야를 다 잘하는 천재’라고 말한다면 그의 노력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빛나는 경력 뒤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확고한 목표를 가지지 말자. 대신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 “여태껏 보여준 열정의 궤적들이 목표를 가지고 시작된 것이 아니듯 앞으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내일은 또 다른 자리에 가있는 나를 보며 뿌듯할 것이다.”
목표를 뚜렷하게 세울수록 그 뚜렷하게 세워진 길이 나를 가두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장황하지만 드넓은 길을 뚜벅뚜벅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 걷다 보면 어딘가 닿을 것이다.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수없이 찍힌 내 발자국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고, 또다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