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도 한 명의 '공방 그녀'
요즘은 도자기를 배우러 다닌다. 한 자리에서 꽤 오래된, 작은 공방에는 흙먼지가 가득 묻은 데님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들이 많다. 그녀들의 모든 동작은 듣기 좋은 백색소음을 많이 만든다. 위잉 물레 도는 소리며, 점토를 치덕이는 소리, 무딘 칼로 서걱서걱 마른 흙을 깎아내는 소리. 그 소리들은 서툰 손자국이 남은 찻잔도 만들고, 꽤 그럴싸한 항아리도 만들고, 버섯을 닮은 접시 같은 것도 만들어낸다. 누가 무얼 어떻게 만들든 다 예쁨 받는 시간. 공방에서는 어느 것 하나 홀대받지 않고 바닥부터 선반까지 빼곡하게 쌓여 있다.
어느덧 나도 한 명의 '공방 그녀'가 되어 앞치마를 메고, 머리를 질끈 묶는다.
나는 물레를 배운다. 물레는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꽤 터프한 작업이다. 먼저 토련기에서 갓 뽑은 거대한 가래떡 모양의 흙 기둥을 700그램 정도 잘라낸다. 잘라낸 흙덩이는 물레 판에 떡- 소리 나게 붙인 뒤 모서리를 두들겨준다. 흙이 잘 붙었으면 전기 물레에 전원을 넣고, 똑딱이 레버를 밀어 올린다. 왼 발은 발 하나 높이의 작은 목침 위에, 오른발은 페달 위에 놓고 적당한 속도로 밟으면 물레가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이제 본격적인 물레 성형이 시작된다.
물레의 회전축에 흙덩이의 중심을 정확히 맞추는 작업이 첫 단계이다. 흙덩이는 보기보다 무르지 않고, 물레의 빠른 회전과 손으로 미는 압력에 맞서 저항하기 때문에 버티는 힘이 꽤 들어간다. 양팔이 아닌 몸 전체로 버텨야 중심 잡기를 수월히 할 수 있다. 양 팔꿈치를 갈비뼈에 밀착시키고,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어 팔을 고정해야 한다.
자리를 잘 잡았으면, 손바닥 안쪽을 이용하여 흙덩이가 사방으로 밀려나려는 힘을 서서히 중앙으로 몰아간다. 젖은 스펀지로 물을 먹여가며 힘을 쏟다 보면 중심으로부터 질고 부드러운 기둥이 천천히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기둥을 끌어내렸다 다시 밀어 올리며 중심과 위아래를 정렬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중심의 소용돌이가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얌전히 머무르는 순간이 오면 중심이 잘 잡힌 것이다. 적당한 높이와 크기에서 지금이다, 싶을 때 가만히 손을 뗀다. 중심도 잘 잡히고, 물을 잔뜩 머금어 표면이 매끄러워진 흙덩이는 이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페달을 달래 가며 성형하기 좋은 물레의 속도를 만든다.
엄지 손가락으로 중심을 파고들어 바닥을 다지고, 손바닥 전체로 벽을 밀어내며 공간을 넓힌다. 양 손바닥 사이에 벽을 끼고 바닥에서부터 타고 오르며 두께와 높이를 조절한다. 손의 감각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시간. 다시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아래에서 위로, 질고 부드러운 진흙으로 범벅된 손으로 살살 달래듯, 충분히 시간을 들이며 오르내린다. 물과 흙이 자연스레 사람 손길을 타도록 하는 그 특유의 느리고 우아한 동작들에서 눈이 편안해지는 완만한 곡선이 태어난다.
나는 아무 장식도 없는 밋밋한 일자형 컵을 계속 만든다. 도예 초보에겐 일정하게 같은 모양의 기물을 만들어 내는 게 제법 만만치 않다. 여덟 개 정도 만들고 나면 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허리도 고개도 아프다. 연습한 기물들은 말리지 않고 모조리 구겨서 망가뜨린 다음 다시 반죽기에 넣는다. 변태야 넌, 선생님이 찡그리며 말한다. 물레 여기저기 범벅이 된 진흙을 버리고, 도구를 닦고, 자리를 정리한 뒤 앞치마를 벗으면 오늘의 도예 끝.
공방을 나와 다시 전쟁 같은 일상으로 복귀한 며칠간은 팔, 어깨, 목 뒤꼍에 시큰한 통증이 머물다가 수요일쯤 희미해진다. 일을 할 때 약간 성가시지만, 좋아하는 무언가에 오롯이 몰입했던 순간이 온몸에 각인된 것이란 게 싫진 않다.
감정이 소란을 일으킬 때, 도자기 수업의 후유증을 떠올리면 묘한 평화가 찾아온다. 중심이 잘 잡히면 흔들리지 않아—물레 앞에서 온몸으로 버티며 마주했던 아주 단순한 진실, 위잉 돌아가는 소리와 진흙으로 범벅된 손, 안간힘을 쏟은 것들을 구겨 부수던 순간의 해방감 같은 것들이 되살아난다. 주말엔 도자기를 빚고 평일엔 나를 빚는다고 생각하면 손끝에 남았던 진흙의 감촉이 아득히 스며든다. 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느덧 조용히 정돈되고,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내일은 또 내일의 일상을 두들길 것이고, 살살 달래다 하루의 끝에서 구겨서 버릴 것이다. 언젠간 오래도록 쓸모 있는 날들이 많아지겠지. 오늘의 도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