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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내일의 불안이 연합하여 오늘의 불안에 물을 댄다. 버거워져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약하고 초라한 상태를 상기시킨다. 삶의 균열은 그런 상태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범람을 힘껏 막아내며 산다고 믿었던 굳은 순간들이 얕은 마모에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논리에만 함몰되어 마음을 희생시키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뒤척이는 밤이 쌓여간다. 기진한 몸을 누인 채 오늘 조금 더 내어 줘야만 했던 것들을 생각한다. 눈길 닿는 대로 보려는 시선, 느껴지는 대로 뱉으려는 입을 잠가내며 버텨내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왜곡된 현상인 것뿐일지도 모른다. 삶의 굴절은 어디까지인 걸까.
침대 머리맡의 노트를 펼친다. 모든 불행을 응징하는 상상을 적어본다. 사람을 죽이고, 이대로 죽어도 좋은 섹스를 하고, 싫은 사람의 장례식에서 아무도 모르게 기뻐하며, 지치지 않는 글 속에서 현실의 세계를 마음껏 허문다. 버거운 날일 수록 과격한 상상이 쏟아진다. 원하는 만큼 실컷 하고 나면 차분해진다. 이건 배설이야, 글이 아니야. 상기된 펜 끝을 마침표 위에 내려놓으며 생각한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잠이 모래처럼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