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터박스 Jun 21. 2020

기억을 기억한다.

퓨처 트레이닝: 소고기 미역국과 백옥동할머니

먹을 건 있어서 저렇게 파는 거냐?


바랜 목소리,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


백옥동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그게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나이 17살,

고1이 되던 시기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났다.

아버지께서 기르던 청둥오리 몇만 마리는  농장에서 풀어 주변 논에 떨어진 나락이라도 주워 먹게 몰고 다니길 2주 정도 했다.


학교는 언제 갈 거냐?

가야죠. 일단 이것들부터 해결하고요.

다 죽게 가둬둘 순 없잖아요. 다행히 논에 풀어놓는 건 허락하셨어요.  저 너매 보리싹 있는 곳에  못 가게 막아두었는데 애네 본성이 나오는지 날기를 시도해서 이제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어요.

근데 진짜 어떻게 오셨어요?


어제 읍내 신병이 도진 놈이 있다고 와 봐 달래서 내려왔다가 경찰서에 들러 바카스 얻어먹는데 소장 놈이 네가 경찰서에 신고해서 출동했다고 이야길 해서 내가 왔재. 용한 분이라서 그냥 알고 왔을까 봐 눈을 그렇게 하악 뜨고 보는 것이냐!  


가자 점심도 먹고 동생들도 보게, 언니 배고플 텐데 농장 가서 안 온다고 걱정하는 것들 보러 가자.


3킬로 남짓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묻지도 않은 ,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떻게 돌아가시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키가 크셨다고 한다. 부지런히 쟁기질을 하시고 쟁기질이 끝나면 소를 돌보셨는데 소를 예뻐하셔셔 그런지 소고기를 안 드셨다고 하셨다.


근데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

갑자기 소고기를  엄청 드시고 싶어 하시면서 증조할머니를 매일매일 괴롭히시더니 급기야 집에 있는 소를 잡아드시겠다면서 소를 몰고 앞산으로 오르셨는데 소가 자길 죽이려 하는 걸 알았는지 할아버질 뿔로 들이받았고 할아버지는 갈비뼈에 금이 가게 다치셨는데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이상했다.

무슨 이런 황당하고 해괴한 이야기가 다 있나.

사람이 기세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나? 아니  사라져도 되는 것인가? 뭔가 배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뭔가가 튀어나오지 못하고 엉친듯 뻐근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근데 그다음 백옥동 할머니 이야긴 더 이상했다.


너 소고기 못 먹지?


나는 할머니께 왜 이야길 하는지도 그리고 그걸 왜 물어보는지도 묻지 않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겨울이 차다 느꼈고

산능성이가 거인이 누운 것처럼 보여 저기 어디쯤이 얼굴이겠구나라고 생각으로, 생각으로 도피했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께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놓고 농장으로 오신 걸 알았다. 할머니께서도 오늘 엄청 많이 걸으셨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얼른 밥 먹게 씻고 오너라.

넷째는 작은 국그릇에 있는  미역국 떠서 언니 앞에 줘라.


소고기가 안 들어간 맑은 미역국을 따로 준비해주셨던 거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고기 미역국을 안 먹었다.

소고기 특유의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미역을 넣고 마늘을 넣고 볶는다.

쌀뜨물을 넣고 끓이다가 다 끓으면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마지막에 달걀을 풀어 준다. 허공에 엄마의 손이 움직이는 착각이 들었다. 맛이 흡사 엄마 미역국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백옥동 할머니께서 담배를 무시더니 무심하게 돈을 주셨다.


너무 모든 걸 책임지고 니가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그래 봤자 이제 17살 피 덩이다. 물론  니가 무엇으로 이리 맘을 먹고 하는지 할미는 모른다. 그저 너는 니 나이에 맞게 그리 살면 된다. 이 돈으로 가장 필요한 걸 해라. 학교에 낼 돈이 밀려서 안 가는 거면 그걸 내고.


 할머니께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오신 김에 마을에 볼일을 보고 가실 거라고 안 들리고 가실 거라고 하셨다.


마음이 땅으로 꺼질 듯이 무거워졌다.


백옥동 할머니께서 주신 돈으로 철망을 사다가 청둥오리들이 보리싹이 올라온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그날 동생들과 상의를 했다.

우리가 엄마 아빠 안 계신 집에 있으면 어제처럼 아저씨들이 와서 엄마 아빠 어딨는지 묻기 위해 와서 행패를 부릴 것이니 차라리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각자 꼭 필요한 것들과 책을 챙겨서 짐가방 2개씩만 준비하라고 하고 외할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께서는 오늘 밤에 당장 오라고 했지만

농장에 청둥오리들이 걱정되어 안된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소고기 미역국을 안 먹는걸 백옥동 할머니께서 어떻게 알았을까에 대해 동생들이 물었다. 시큰둥하게 엄마가 이야기해줬나 보지 했지만 낮에 들은 증조할아버지 이야기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보리싹으로 가는 걸 막는 철망을 쳤지만 날아 올라 철망을 넘고 갈 수도 있고 보리싹 반대쪽 논들 나락 주워 먹기도 이제 거의 끝나가는 듯해 보였기 때문이다.


청둥오리들을 풀어놓고 외할머니댁으로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주변에 피해를 줄 순 없었고 아직 오리들을 팔기엔 너무 어렸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 어르신들께 말씀드렸다. 괜찮다고 보리는 걱정 말라고 하셨다. 점심 즈음 동네에 큰 싸움이 났다. 우리 청둥오리 새끼들을 오리 농장에 파는 게 어떤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사달이 난 거였다.



 백옥동 할머니께서


어린 게 살생을 안 하고 새끼들이 굶어 죽을까 봐 학교도 안 가고 논으로 몰아서 검은 천으로 둑 쌓듯이 못 나가게 처서 하루 종일 돌보기를 2주 동안 하는데 동네 어른들이 박가한테 도움 안 받은 사람이 없는데 애들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 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 중 흰 오리 농장을 하시는 분이 다섯 분이었는데 이분들끼리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고 그중에는 새끼 청둥오리를 방생하면 다 잡아다가 본인이 키울 생각을 하시기도 해서   싸우시게 된 거다


이야길 전해 듣는데 부아가 치밀어 올라와 눈물이 났다.

어제 할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마시고 싸움난 곳으로 갔다.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어울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지옥 같던 순간이 떠올랐다.


희정이 아버지 작년에 갯벌 논 문제로 은행에서 차압 들어온다 할 때 해결해준 거 누구요?


진석 할아버지 , 진석이 엄마 바람나서 경찰서 들락거릴 때 누가 알아봐 줬나요?


석형이 니는 가만있어라.

석형이네 트럭타 까바져서 거기 깔렸을 때 누가 업고 뛰어 병원 갔나요?


진원이 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이번에는 아저씨한테 빚을 진 게 맞죠? 근데 그전에 아저씨네는 우리 아버지께 빚지고 안 사셨소?


어른들이 신발 신고 집에 들어와 아버지 어딨는지 알아내라고 그렇게 소리쳐도 아는 게 없어서 말을 못 해 드립니다. 그 돈을 우리 아버지께 빌려주셨지 우리에게 천 원 한 장 빌려주셨소? 내 아버지가 아저씨들한테 돈 빌려주고 못 받을 때도 아버지는 아빠가 아빠 돈 빌려주고 못 받았지 니들 돈 주고 못 받은 거 아니다 하십디다. 맞는 말이지요.

이제 그만 집에서 나가세요.


나에게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일단 내가 가장 언니였고 2주 전 학교에서 주거침입죄에 대해 배웠고 아 이게 주거의 평온을 해하는 거구나. 신고해야겠다 해서 경찰서 소장 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어른들의 욕소리와 동생들의 울음소리가 섞여 경찰 소장 삼촌은 출동을 했다. 경찰차가 오고 소란이 잠잠해지는 그 순간 나는 기절했다. 기절하기 찰나의 순간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누구라도 도와줘. 조상님들 도와주세요. 제발


김 씨 할머니는 부지런히 장독대를 오가고 계셨다.

빨갛게 익은 김치가 보였다. 할머니표 정갈한 반찬들도 보였다. 애기들 먹으라고 진미채와 멸치 볶음도 보였다.


할머니 서운하게 말도 안 하고 갈 생각이었냐?


아직.. 더 있다가 갈 생각이었어요.


택시 불렀다고 하던데...


네. 어린 동생들 먼저 보낼라고요. 저는 아직 오리를 다 정리하지 못했어요.


그래. 오리 말이다.

누구라도 키운다고 하면 돈 받고 줘 불고 가그라.


누가 사가겠어요?

어려서 사료를 더 먹여야 할 거고  날기도 하고.. 어렵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당장 저렇게 싸우실 건데 누가 맡겠어요.

싸움이 났다 해서 왔는데 가봐야겠어요.  할머니도 지 편드느라 괜히 고생하지 마세요.


백옥동 양반이 그러더라.

산에서 기도하는데 니 증조할아버지란 분이 나타나 희재 좀 도와주시오 하더란다. 교회 다니는 사람한테 별 해괴한 소리를 다한다 하고 톡 쏘아붙였다만 그분이 돈 한두 푼에 내려오시는 양반이 아닌데 내려와 동네 사람들한테 한소리 하고 가실 때는 그만하신 게 있으셨겠지.

물론 느그 아버지 예뻐하는 거야 동네가 다 아는 사실이다만


김 씨 할머니께서 싸주신 반찬들을 정리하며 한참 멍 때렸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먼산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할머니가 싸주신 반찬량은 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을 거고 쌀독에 쌀도 일주일 정도 분량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께 집안 상황을 이야기했다. 울지 않았고 조퇴를 했다.  집안 정리를 했다.  냉동고에 얼린 오리고기가 꽤 되었다. 읍내에 엄마랑 오리고기를 거래하시는 여자 사장님께 가서 100마리 정도를 팔았다. 돈은 외할머니 계좌로 보내달라고 했다. 창고에 나락이 꽤 있었다. 석형이 아버지는 미웠지만 나락을 처리하려면 한 번은 부딪혀야 했다. 석형 아줌마가 나오셨다. 나를 보자마자 우셨다. 나락을 처분하려고 하는데 라고 이야길 꺼내자마자 아줌마는 아저씨를 불렀고 창고에 있던 나락을 차에 다 꺼내 실었다. 그걸 처분한 돈은 역시 외할머니 계좌로 보내달라고 했다.


트랙터를 비롯한 각종 농기계는 김 씨 할머니께 맡겼다. 누가 빌려달라고 하면 할머니가 빌려주고 관리하시면 된다 하고 창고 열쇠를 드렸다.


목요일 아침에 작은 동에 있는 오리를 내보냈고 목요일 오후에 돌아온 오리들도 있었지만 무사히 날아간듯해 조금 홀가분해졌다. 금요일 아침 중간동에 있는 오리를 내보냈다. 역시 오후에 돌아온 녀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가장 큰 동에 있는 오리를 내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일요일 아침 집 문단속을 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농장 정리를 한 후 돌아서는데 백옥동 할머니께서 또 오셨다.


가자.

할머니 특유의 바랜 목소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향내 나는 회색 저고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할머니께서  차에 오르셨다.  나는 다시 안 올 마을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매해 생일 되면 나는 소고기  미역국을 끓인다.

생일 전 날 미역을 물에 불릴때부터 나는 기억을 기억을 한다. 기억을 기억하다보니 그 순간의 감정들이 더 선명해지고 나빴던 일들은 조금씩 빛바래간다.


소고기 200 그램만 주세요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기 전 소고기를 밑간할때마다 이 고기를 드시고 싶어하셨을 증조할아버지를 생각해본다.


다시마 멸치, 건새우로 육수를 내는데 백옥동 할머니는 그날 어떻게 하셨을까 고민해본다.


끓이면 제일 먼저 감사한 마음으로 한 그릇 떠서 둔다.

정말 증조할아버지께서 하신거든 혹은 조상님이든 아니면 돌아가신 백옥동 할머니 이시든 나의 그 날을 지켜주신 분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매해 소고기 미약국을 끓인다.




















keywor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