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리니 Oct 15. 2023

핫딜은 거저 싼 것이 아니다

좁은 집에서 핫딜 대량구매란

한동안 내 핸드폰엔 핫딜 알림이 자주 울렸다.     


#기저귀핫딜, #장난감핫딜, #분유핫딜 등 아기 용품들 관련 알림을 많이 설정해뒀기 때문. 

인기 맘카페에 구매하고 싶은 제품들의 키워드를

등록 > 알림 설정을 해두면 괜찮은 핫딜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내 폰으로 알림이 울린다.      


처음엔 정가보다 싼 가격의 정보들이 쏟아지니 마냥 좋다고만 생각했다. 빠르게 습득한 핫딜 정보 덕에 평소 구매가보다 꽤나 싸게 물품을 사들인 후엔 이것이야말로 합리적이고도 똑똑한 엄마의 소비구나, 싶어 흐뭇했다.


육아를 위해 일을 관둔 프리랜서 엄마에게 핫딜은 달콤한 키워드였다. 매일 아기와 함께하며 육아 노동 중이지만 땡전 한 푼 떨어지는 돈 없는 ‘육아무직자’에겐, 한 푼의 지출이라도 줄이는 게 곧 남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몇 번 더 핫딜 구매를 하며 깨달았다.


핫딜은 거저 싼 것이 아니라는 것.

핫딜 구매를 위해선 다양하고도 디테일한 조건들을 수행해야 하고, 그 수행엔 내 시간과 정성이 따른다.    

 

일단 키워드 알림의 홍수를 견뎌내야 한다. #기저귀핫딜 키워드가 들어가긴 했지만 핫딜이 아닌 글일 때도 있고 (가령 “기저귀 핫딜 없나요?” 같은 문의 글들), 핫딜이라 주장하며 홍보 글을 올리는 업체의 게시물일 때도 많다. 이런 온갖 알림 글들을 확인한 끝에 찐 핫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직접 설정했던 핫딜 구독 키워드



또한 핫딜 구매를 위해선 해당 사이트에 신규가입도 해야 하고, 할인 쿠폰도 발급 받아야 하고, 특정 카드를 써야 하기도 한다. 구매가 끝난 뒤에 해당 업체에서 온갖 홍보톡과 문자를 보내오는 것은 덤. 이렇게 또 내 소중한 개인 정보를 핫딜에 흘려보낸다.


무엇보다 핫딜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대량구매’다. 이 대량구매 조건은 분유나 기저귀처럼 매일, 자주, 많이 소비되는 물품들엔 더더욱 디폴트다. 기저귀의 장당 가격은 한 박스를 구매할 때보다 열 박스를 구매할 때 훨씬 더 싸다. 우리 아기의 경우 하루 평균 기저귀 10장은 쓰니, 장당 가격이 100원이라도 싸면 하루에 천 원, 한 달이면 3만 원은 절약하는 셈이다.     




그럼 기저귀는 당연히 핫딜로 최대한 많-이 구매하는 게 남는 장사 아닌가?     


아니다.

나처럼 작은 집에 사는 사람에겐 더더욱.




나는 장당 최저가의 기저귀를 사기 위해 무려 5박스의 기저귀(기저귀 약 500장)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사용하는 두 달 내내 후회했다. 일단 구매 직후 현관에 5박스의 기저귀가 적재돼있는 상황부터 스트레스였다. 


좁은 현관을 꽉 채운 무려 두 달치 기저귀, 언박싱의 즐거움도 없는 기저귀, 

무엇보다 이 기저귀를 보관할 곳이 없는 19평 집.   


작은 집에서 공간을 빠듯하게 활용하며 살고있는 마당에 기저귀 5박스를 여유롭게 쌓아 둘 곳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대형 장난감과 유아차로 꽉 차 있는 아기방에 기저귀들을 이곳저곳 욱여넣을 수 밖에.


그 때 생각했다. 누군가 말했듯 이 집에서 가장 비싼 건 명품백도, 기저귀도 아닌 이 집 한 평이 아닌가. 근데 난 기저귀 장당 100원 아끼겠다고 소중한 아기방을 기저귀 방으로 만들었다. 그 날 내 다짐은 싸게 산 기저귀들을 한 장씩 잘 써야겠다,가 아니라 얼른 해치워 버려야겠다로 수렴됐고, 이 마음은 500장의 기저귀를 다 소진할 때까지 50일간 계속됐다.   

   



요즘의 나는 아기 분유나 기저귀는 떨어지기 직전, 정말 필요한 순간에 딱 필요한 양만 신속하게 구매한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언제든 살 수 있으며, 배송 역시 하루 이틀이면 오지 않는가. 로켓처럼 배송하는 시대이니. 


핫딜을 포기하고 나니 아주 홀가분하다. 

사이트별로 가격을 비교해 최저가를 고르고, 물품을 채워넣고,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핫딜에 신경 쓸 여력으로 어질러진 집안 한 번이라도 더 정리할 수 있다.


내 돈 쓰면서 스트레스받는 핫딜 구매는

나에게 그닥 남는 것이 없으며,

좁은 집을 쾌적하게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적게 사들이는 것이다.

 

이 집에 사는 한, 내게 기저귀 핫딜 구매는 없다.

훗날 넓은 집에 이사 가는 그 날, 기념으로 사들이리(!!)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주방에 맘마존 끼얹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