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글을 쓰는 지금도 이 집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다가오지도 않은,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불투명한 미래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마음이 축축해진다.
올해로 서울 자취경력 19년 차다. 나의 커리어보다, 커리어를 제외하고도 그 어떠한 경력을 넘어서는 숫자다. 월세가 저렴한 대신 아래층에는 고깃집이 위치해 있어 매일 밤 고성방가와 비릿한 냄새를 맡아야 했고 심지어 여우 같은 집주인에게 보증금까지 차감당했던 원룸살이, 내 몸 하나 뉘이면 끝이었던 또 다른 원룸, 집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주택, 출근한 사이 도둑이 대문을 따고 들어왔던 반지하 주택, 처음으로 쾌적한 주변환경에 위치해 있었던 신축빌라, 그 뒤 형편이 좋지 않아 재건축 개발 예정인 동네로 들어갔던 낡은 투룸.
모든 집들 속에서 나는 울기도 했지만 웃기도 했다. 창문에서는 비릿한 고기냄새가 올라오고 화장실에서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지만 친구들을 초대하여 전자피아노를 연주해주기도 했고 땅콩만 한 원룸에서는 주방의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을 맞으며 요리를 하기도 했었으며 재건축 개발 예정인 집에서는 기존의 집들에 비해 더 오래 살았고 심지어 그곳에서 창업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렇게 수많은 집들과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지금의 집을 만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는가? 나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자취경력이 이 정도 되면 이 집이 나의 집이 될 수도 있겠다는 뜨거운 신호는 알아차릴 수 있다.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신호말이다. 지금의 집이 그랬다.
매일 아침의 시작은 물 한잔과 함께 베란다 밖의 풍경을 보는 일이었고, 계절이 바뀜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색상을 휴대폰에 담는 일이 일상이 되었으며 집을 조금만 나서면 남산타워보다 아름다운 전망이펼쳐진 산책길을 걷는 것이 주말의 루틴이었고, 건물 안에서 마주치면 수줍게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 재개발을 막기 위해 동네를 가꾸는 동네주민들의 자발적인 태도 등 이 집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집에 대한 행복을 느꼈다.
언젠가는 떠날 이 집을 기억하고 영원히 담아두기 위해서 기록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