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공간의 인연
이 집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부동산에서부터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던 골목 끝자락에서 마주한 빌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다시 한번 숨을 장전하고 끝까지 올라가야 했던 이곳.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오르막길에서의 여정을 모두 잊게 해 주었던 오후의 햇살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전 세입자의 간소한 살림 덕분인지 집 자체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이삿날 짐이 모두 비워지고 난 후 텅 빈 집을 마주했을 때의 그 충격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기도 했다.
한 달 넘게 이 동네 저 동네를 유랑하며 지친 탓이었을까, 베란다 밖의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 탓이었을까, 중개업자에게 경쟁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탓이었을까. 소개팅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마음의 판단 속도가 빨라지듯이 집도 많이 보고 살아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판단 능력이 향상된 탓이었을까. 나는 그다음 날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연'이 존재하듯이 사람과 공간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간이 나를 이끌었는지 내가 공간에 이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공간과 인연을 맺기로 했다.
서울살이 15년 만에 자가는 아니었지만 최초로 방 3칸이 있는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내 몸 하나를 뉘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원룸, 매일 역한 냄새가 올라왔던 화장실, 전 세입자의 알 수 없는 과거로 인하여 우편함에는 독촉장이 꽂히고 검찰청 사람들과 경찰이 불쑥 찾아왔던 집, 출근한 사이 도둑이 대문을 따고 들어왔던 집 등 그동안 서울에서의 자취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나였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삿날이 잡힌 후 엄마가 우리 집 아래로 맑은 물이 폭포처럼 콸콸 쏟아졌다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평소 꿈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엄마였기에 나는 이 꿈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 꿈을 부적 삼아 앞으로 이 집에 머무르는 동안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집은 아니었지만 이 집에서 만큼은 그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자취라이프를 실현시키고 싶었다.
집으로 초대한 지인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차를 타고 오거나 버스를 타고 올 때 갑자기 차가 산으로 올라가니 당황하지 말라고. 그렇게 다소 힘들게 올라온 지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말한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몰랐다고. 나는 조금은 불편한 교통환경을 과감히 포기한 대신 서울에서 쉽게 보기 힘든 조망권을 선택했다. 덕분에 이사 후 이전보다 조금 더 부지런해졌고 매일 아침 베란다로 나가 수묵화처럼 겹겹이 쌓인 북한산을 바라보며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왔을 때 거실 바닥 깊숙이 내려앉은 햇살, 이른 아침 귀를 간지럽히는 투명한 새소리들, 식탁 의자에 앉으면 보이는 창 밖의 반짝이는 나뭇잎들과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결, 베란다 밖의 고요하고 아늑해지는 풍경. 나는 이 집에게 나의 이름을 따서 '지혜펜션'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첫눈에 반했던 이십 년 전의 첫사랑은 내게 멈추지 않는 눈물을 선물해 주었지만 첫눈에 반한 이 집은 내게 위로를 선물해 주었다. 이사 후 3년이 지난 지금은 돌이켜보면 결코 행복한 순간들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계절이 더해지면서 나는 이 집과, 이 동네를 점점 더 깊이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