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수술
멍울을 처음 발견한 것은 열아홉 살이었다. 한쪽 가슴의 모양이 일그러질 정도로 툭 튀어나온 멍울의 병명을 들은 날 엄마와 나는 길 한복판에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지금은 주변 지인들로부터도 경험담을 쉽게 듣는 섬유선종이었지만 당시에는 태어나서 처음 들은 그 병명이, 주변에서는 아무도 발병되지 않았던 터라 생소하면서도 두려웠다. 무엇이 나의 몸 안에서 덩어리를 만든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런 병이 생긴 것일까. 나는 과거의 시계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내 탓을 하고 있었다. 일종의 화병처럼 분명 내가 마음을 잘못 먹어서 생긴 병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처녀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멍울 부위를 관통하는 긴 침을 맞기도 했고 어혈을 푼다며 사혈부항을 뜨기도 했다. 하지만 멍울은 사라지지 않았고 내 가슴은 점점 망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을까.
이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도 멍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하게 위치해 있었다. 더 이상의 한방치료나 자연요법은 아니라고 판단했고 깔끔하게 제거하는 양방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병도 아니었을뿐더러 발견 당시 바로 제거했더라면 시간, 돈, 몸과 마음이 오히려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때의 엄마와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년, 짧게는 반년 단위로 추적검사를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섬유선종으로만 총 5번의 수술을 했다. 멍울은 이제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수술을 할 때마다 나는 생명을 연장받은 기분이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잠시 일상을 중단시켜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멍울을 떼어버린 만큼 마음의 짐도 덜어지는 듯했다. 처음 수술을 받았을 때는 멍울이 생긴 것을 온전히 내 탓으로 돌렸기에 나는 수술 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하고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달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불만이 있거나 정당하지 않은 일을 겪어도 상대방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고 늘 속앓이를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이 없고 예방조차 할 수 없는 병이라고 말했지만 멍울은 소심한 나의 성격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고 믿었었다. 이러한 나의 다짐 덕분인지 나는 예전보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라. 말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운가. 그런데 원하는 일들이 반복해서 실패하는 경험을 하게 되자 나에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그 결과까지는 온전하게 끌어 안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루어진 일들도 있었지만 수없이 좌절하는 날들이 빈번했다. 나는 또다시 내 탓으로 돌렸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내가 말이나 행동을 잘못해서 그런 거야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한참을 괴로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어느 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남'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고 탐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공부하는 학생들은 모두 1등을 하고 싶어 할 텐데 실제로 모두 1등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을 모두 살 수 있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모두 먹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또는 간절히 바랐던 과거의 인연과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그 순간에는 슬픔을 감당해야 하지만 돌이켜보면 과거의 인연과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하지 않았던가. 삶의 단순한 진리를 알아차리게 되자 이전보다 삶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노력은 하되 그것이 되지 않았을 때에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멍울은 처음에는 내게 슬픔을 선물해 주었고 두 번째는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자유의지를 주었고 세 번째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여전히 정기검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수십 번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어떡하지 하고 늘 걱정을 앞세우며 위협을 느낀 고슴도치처럼 움츠러들어있다. 결과를 듣고 나서야 다시 편안한 호흡을 내뱉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멍울이 있기에 나는 예전보다 내 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타인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몸에 병이 없으면 가장 좋지만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하랴.
보왕삼매론에 이런 말이 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서 양약으로 삼으라 하셨으니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이 구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되뇌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멍울들과 살아가면서 앞으로도 여러 번의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나는 길에서 하염없이 울던 여린 마음을 가진 열아홉 살의 어린 소녀는 아니다. 이제 나는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