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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Oct 18. 2023

할머니가 내게 남기고 간 유산

  

 어릴 적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학교 숙제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는 어린이 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일기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인이 되어 읽어 보았던 일기장 속의 ‘눈’을 주제로 한 동시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녹아 있기도 했지만 사실보다 더욱 과장된 묘사와 어떻게든 괜찮은 마무리로 끝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나는 왜 그렇게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았던 것일까, 아니 그렇게 보려고 했던 것일까.      

    


 할머니는 매일 엄마에게 욕을 퍼부었다. 남자아이 하나 못 낳는다고. 그때는 몰랐다. 태어나는 생명의 성별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할머니 바람과 달리 아빠와 엄마는 세 명의 딸을 탄생시켰다. 할머니는 1920년대에 태어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사람이었다. 열여섯 살에 당시 삼십 대였던 할아버지와 결혼했고 아빠가 세 살 즈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안 해본 장사 없이 아빠와 두 명의 고모를 혼자서 키워내셨다고 한다. 남아선호사상이 주류였던 시절에 할머니는 다행히도 아들을 낳았고 고모들은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돈을 벌어야 했으며 아빠는 세 여자의 희생 덕분에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할머니에게 아빠는 자신의 전부였다.           



 매일이 고성과 욕설로 가득한 전쟁터였다. 덕분에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세 자매의 관계는 결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가 생성되어 날로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엄마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와 달리 말 수가 적고 화도 한번 제대로 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보이지 않는 시커먼 멍이 많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엄마는 할머니와 싸운 이후에도 할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리는 일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고 나는 하교 후 집에 들어올 때 단 한 번도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나의 눈과 귀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었고 어두웠던 것들을 경험했지만 손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써나갔다. 종이 위에 연필로 글을 쓰는 일은 내게 한풀이의 과정과도 같았고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종교와도 같았다.    

       


 돌이켜보니 할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세 자매, 엄마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글쓰기. 이렇게 마음을 눈앞에 펼쳐보니 꼭 할머니를 미워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나는 그녀를 참으로 미워했지만 미워하면 할수록 내 삶 속에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아메바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내가 할머니가 태어났던 그 해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갔을까.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결혼식에서 처음 본 남자와 십 대에 결혼을 하고 아들 낳는 것을 강요받고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었다면 나는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할머니의 역사는 엄마의 역사이기도 했고 나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직도 할머니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한 사람으로서, 한 여자로서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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