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여행지를 정하며 깨달은 점
약 한 달 반의 고민 끝에 최종 몰디브 리조트 한 곳을 결정했다. 여행사에 예약 요청을 하고 지난주 금요일 이메일로 계약서가 날아왔다. 계약금 40만 원만 넣으면 지난 시간 동안 수십 개의 리조트를 가격, 위치, 인테리어, 혜택 등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여러 여행사에 견적을 요청하며 내가 마음에 들지만 가격이 높아 가성비 있는 리조트를 선호하던 짝꿍을 설득하던 그 모든 과정이 끝날 예정이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몰디브대 리조트학과라는 말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구나를 체감한 시간이었다. 혹시 모르니 짝꿍과 대면으로 계약서를 한번 더 체크한 후 계약금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여행사 직원분께는 주말 중 계약금을 이체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이 밝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출 준비를 하다가 유튜브에 '결혼 준비'를 검색하고 발견한 영상 한 편을 보았다. '주차로 시작해 축의금 비교하고 밥맛으로 끝나는 우리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이미 자연스럽게 굳어져 버린 한국의 결혼식 문화를 꼬집는 이야기였는데 영상 내용의 핵심은 사람들은 결혼식을 준비하고 식을 올리는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내가 이만큼 잘 살고 있어요'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기에 결혼식장, 혼수, 프로포즈, 신혼여행 등을 무리해서라도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더 비싸고 좋은 곳에서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갑자기 현타가 왔다. 단 한 번도 다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가고 싶었던 이유를 돌아보았다. 몰디브를 신혼여행지를 정한 시작은 생각의 흐름은 이러했다.
신혼여행 어디로 가지? 보통 사람들은 하와이/몰디브/칸쿤/유럽/발리 많이 간다던데. 우리 커플은 관광보다는 휴양파고,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이때 아니면 못 가는 먼 곳, 비싼 곳 가자.' 그렇다면 대표적인 휴양지 몰디브, 발리 중에서도 이왕 쓰는 거 돈이 더 많이 드는 몰디브로 가면 되겠다.
그렇게 몰디브로 결정된 것이었다. (물론 짝꿍은 나와는 다른 생각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는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지?'라고 열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많이 가는 신혼여행지' 4~5군데 중에서 더 럭셔리해서(한 번에 태우는 돈이 많아서) 몰디브를 선택했다는 스스로의 선택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물론 몰디브는 사진으로만 봐도 너무 멋진 여행지이고 가면 정말 평생 기억에 남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4박 5일 일정에 최소 1000만 원 경비(리조트에 따라 경비를 줄일 수도, 확 늘 수도 있다)가 드는 여행지이고, 1박에 200만 원 상당의 리조트 비용이 든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게는 몇만 원, 몇십만 원을 아끼려고 분명 아등바등할 터인데 신혼여행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큰돈을 숙소에 지출하는 것이 맞을까? 그것도 4박인데?
럭셔리한 4박을 위해 너무나 큰 기회비용을 태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애인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가는 신혼여행지 후보 다 떠나서 열린 질문으로 '우리가 정말 가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야?'라는 질문을 나눠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오후 서순라길에 있는 라멘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스페인 마요르카와 포르투를 묶어서 같이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애인은 발리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둘 다 '몰디브'를 꼽지는 않았다. 이 또한 나에겐 충격이었다. 우리가 정말로 가고 싶어 하지 않은 여행지에 1박에 200만 원이나 태울 뻔했다니. 아차 싶었다.
몰디브 리조트를 정하는 지난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리조트를 찾고 정리하고 논의하고 의견을 조율하느라 지쳤기도 하고 계약금만 넣으면 이젠 정말 끝이다라는 생각에 조금 홀가분했다. 하지만 아침에 본 유튜브 영상을 통해 스스로에게 '내가 정말 원하는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 끝에 우리는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고민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렇게 다시 고민을 하다가도 몰디브가 우리의 최종 신혼여행지가 될 수도 있다. 몰디브는 죄가 없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신혼여행지이다. 다만 우리가 정말 원하고, 우리다운 최선의 선택을 한 여행지인지 확신이 없고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열어두고 고민한 후 선택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단순히 신혼 여행지를 정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하는 몇 개의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며 '우리도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갈 정도로 괜찮게 살고 있는 신혼부부'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나다운, 우리다운 결정은 무엇인지 그 기준이 되는 핵심 가치를 고민하고 대화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우리에겐 필요했다. 그랬을 때 앞으로 결정할 신혼여행지 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삶의 결정들을 타인과의 비교, 기준이 아니라 우리만의 중심을 가지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혼여행지를 결정하기 전 결혼식장, 결혼반지, 웨딩스냅을 고를 때의 기준도 돌아보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지만 우리다운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주변 지인 중 결혼한 사람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만난 수많은 결혼 선배들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남들의 기준, 선택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겠지만 나다운, 우리 부부다운 선택을 하세요.'라고.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듯 하지만 아직 결혼 준비 과정이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의 남은 결정은 내가 마음이 편한, 주체성인 의사결정을 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