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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진 Jun 29. 2020

도시 이야기: 0화

〈아미스테드 모핀: 또 하나의 세계〉

작년이었나. 넷플릭스에 새로운 퀴어 콘텐츠가 올라왔나 싶어서 여느 때처럼 서핑 중이었다.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는 건 정서적으로 메마를 때 스스로 처방하는 방법으로, 커뮤니티의 애환(?)을 담은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며칠은 파트너에게 스킨십도 자주 하게 되고 삶을 긍정하게 되고… 뭐 그렇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퀴어 콘텐츠는 봤던 터라 <테일 오브 더 시티>(2019)의 새로운 섬네일을 보자마자 냉큼 눌렀다.


근데 참 이상타. <재회>라는 이름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는데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2화를 볼까 말까 하다가 그냥 두고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저 그런 미드였던 채로 기억 속에 있었는데, 어젯밤에 <아미스테드 모핀: 또 하나의 세계>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아미스테드 모핀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 <클로니클>에 기고하던 소설가였다. 그는 20대 중반에 커밍아웃한 뒤 직업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가 기고하는 글은 “테일 오브 더 시티”라는 제목으로 주 5일 발행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를 줄 타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특히 당대적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묘사(?)로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야 잘 모르는 이야기지만 그의 이야기는 최초로 영국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다가 1993년에 미국 방송사 PBS가 세 시즌의 미니시리즈로 내놓기도 했다. 당시 동성애와 알몸, 대마초 흡연 장면으로 꽤나 유명세를 치렀는데, 국회에서 결국 이를 문제 삼기 시작하자 제작이 중단되었다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트랜스젠더 안나 매드리갈 역을 맡았던 올림피아 듀카키스의 것이었다. 그는 <테일 오브 더 시티>(1993)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 꼭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190cm의 MTF 트랜스젠더를 문 앞에서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은 약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실히 느껴진다. 그 트랜스젠더는 올림피아 튜카키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 항상 여자와의 우정을 생각해왔어요.” 당시를 회상하는 그녀는 트랜스젠더에게 기대하던 말이 전혀 아니었다고, 매우 인간적인 무엇이었다고 회고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 <테일 오브 더 시티>(2019)는 아미스테드 모핀이 쓴 소설과 그것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2019년 작에 아미스테드 모핀이 얼마나 관여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가 그의 소설로 보여주고자 했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우리는 여전히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넷플릭스KOR에는 1993년 작만 업로드되어 있으나 넥플릭스US에서는 과거의 전 시즌을 모두 볼 수 있다.) 그가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언덕 1층에 살며 당시를 그리워하는 것은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친구들이 물려준 생명을 유지하고, 그가 만든 프레이즈 ‘생물학적인 가족이 아닌 논리적인 가족’을 찾기 위해서는 아닐지.


그래서 말이 길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테일 오브 더 시티>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연재한다는 것이다. 아미스테드 모핀이 ‘주 5회 마감’을 애증 했듯이 나 또한 최대한 규칙적으로 쓸 것이다. 허나 이 글은 현실을 반영한 그 소설과는 달리 근미래를 살아가는 퀴어에 대해서 쓰일 것으로, 어쩌면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미래편>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힌트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점쳐보는데 SF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꿈 말고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일단, 1화를 쓰기 전에 2화부터 제대로 보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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