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극복한 통쾌한 덩크슛'을 기대한 우리들에게
코치는 속 터져도 우리는 소리 질러~
오합지졸 코미디
이 같은 포스터 문구와 함께 '음주 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 장애인 농구팀을 지도하게 된 유명 코치의 이야기'라는 영화 <챔피언스>의 소개란을 읽으면 쉽게 떠오르는 장면과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엉뚱한 말과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반복하는 모습, 유명하고 유능하지만 차갑고 건방진 코치가 인생에 따뜻함과 여유를 찾아가는 모습, 꼭 1등이 아니어도 참가에 의의를 두는 모습 등 이 영화는 그 일반적인 떠올림에서 크게 벗어남이 없다.
본격적으로 글을 나누기에 앞서 하나 고백하자면, 오프닝을 놓쳤다. 영화는 메가박스 신촌점 시사회에 당첨돼서 개봉 전(물론 지금은 소리 소문도 없이 내려가버린 듯 하지만)에 감상했다. 시사회지만 수령한 실물 티켓에도 그렇게 적혀있었기에 당연히 10분 후 본 영화가 상영될 거라 생각하고 조금 늦게 입장했는데, 난데없는 정시 상영으로 영화는 이미 시작했던 것. 확실하진 않으나 오프닝은 프로농구팀의 전술 코치 '마르코'가 긴박한 경기 중 전술에 관한 의견 충돌로 감독과 다투다 정말로 감독과 물리적으로 '충돌'해버리는 장면이다.
감독과의 충돌로 화가 난 마르코는 술을 마신채 운전대를 잡기에 이르는데(음주운전... 안됩니다...), 지나가던 오토바이에 화를 내다 경찰차 사이드미러에 충돌해버린다. 결국 감옥에 가는 대신 사회봉사 명령이 내려지는데, 마르코가 봉사해야 하는 장소가 지적 장애인 농구팀 '프렌즈'가 있는 시설이다. 바로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후의 스토리는 자세히 적으면 지나친 스포일러가 되기도 하겠거니와 사실 딱히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특별히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다 쓰고 나니 스포일러가 넘치는 것 같으니 스포일러가 싫은 분들은 여기서 멈추시길) 다만 필자는 다른 것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 '장애를 극복한(이겨낸) 통쾌한 덩크슛'과 같은 오독을 범하지만 말길 바란다.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필자 역시 프렌즈 팀의 마지막 슛이 통쾌하게 들어가기만을 바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데, 팀원들로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비연기자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장애인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영화의 경우 '피터 딘클리지' 같은 배우가 아닌 이상, 비장애인 연기파 배우가 나선다. 가까운 사례로 현재 상영작인 <증인>에서는 '김향기'가 자폐증 환자를 '연기'한다. 우리에게 더 친숙한 <맨발의 기봉이>의 '신현준', <말아톤>의 '조승우'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필자는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볼 때면 어딘가 항상 불편했고, 늘 조심스러워졌다. 영화 속에서 목격하는 장애는 대부분 희화화되고 있었고, 그게 아니라면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그려졌다. 중간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느끼는 감상들이 어떤 종류가 되었든 웃기도, 울기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장애인 당사자라면 저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싶어서.
이 부분에 있어서 <챔피언스>를 보는 이들은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일단 지나치게 절망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고, 당사자들이 '이름을 걸고' 하는 연기기에 웃긴 장면에는 마음껏 웃어도 되는 게 두 번째다.(실제로 팀원으로 나오는 배우들은 실제 이름을 극 중 이름으로 그대로 갖다 썼다고 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의 '자립'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고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구공으로 기초적인 패스조차 못하던 팀원이 누구보다 능숙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 각각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며, 보호소에서 동물을 돌보며 자립을 위해 노력하거나 이미 충분히 이뤄낸 장면을 던진다. 물론 더 중한 장애를 가진 이는 공동 요양시설과 같은 곳에서 지속적인 보조를 받으며 생활하는 현실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마르코와 마르코 엄마와의 초반 대화에서 '저능아', '호모' 같은 표현을 정말 찰지게 반복적으로 주고받는데, 후반부에 마르코의 인식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중요한 건 두려움이지 냄새가 아니에요.
마르코가 대면한 어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마 관객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안겨준 것은 바로 냄새였을 거다. 상영관에서 비교적 앞쪽의 명당자리에서 본 탓에 냄새가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것만 같았다. 물에 관해 끔찍한 경험을 가진 한 팀원이 물 자체를 두려워하게 돼 씻지를 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지내도 악취가 심각할 텐데 농구라는 꽤나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나서 그 몸을 안아달라고 하는 부탁은 누구라도 쉽게 받아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결국 마르코는 냄새 탓에 수없이 거부하던 그와의 포옹에 성공한다. 마르코 덕에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그는 나중에 마르코의 두려움(엘리베이터 공포)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기는 게 목표지, 상대를 모욕할 필요까진 없잖아요.
한창 프렌즈팀이 기세 등등할 때 마르코는 팀원들에게 상대가 만만해 보이니 박살내고 오라고 독려한다. 사실 박살 낸다는 표현은 한 팀원이 먼저 썼던 표현인데, 이때 마르코는 한방 먹는다. 이기는 게 목표이긴 한데, 상대를 모욕할 거까지는 없지 않으냐고. 사실 이 대목을 나쁘게 보면 자기가 했던 말도 기억 못 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좋게 본다면 마르코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함께' 성장한 팀원들이 여러 측면의 배려와 존중을 배워간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그런 모습은 조금씩 늘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된 '프렌즈'팀의 결승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리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결승에서 패한 팀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 패배한 팀원들이 우승한 팀원들에게 먼저 달려가 안기며 축하를 마구 쏟아낸다. 패배한 팀원들이 낙담하거나 화내거나 사죄하는 게 아니라 축하를 건네는 풍경은 어딘가 어색하다.
보통 스포츠 경기의 결승이 끝나면 이긴 팀은 축하하기에 정신이 없고, 그나마 상대가 서로 마주 잡는 때에는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는 모습이 조금은 앞서지 않는가. 전쟁터가 아닌 이상 경기장에서 마땅히 보여야 할 스포츠맨십을 드물게 여기서 목격하게 된다. 게다가 외로운 챔피언보다 2등이 낫지 않냐고 말하기까지 한다. 최선을 다했고, 결과에 승복하고, 경기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우리'가 결국 챔피언이었던 거다.
세상은 작은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성취로 가득하단다.
글을 줄이기 전, 필자의 이 글이 '건방진' 비장애인의 막말이 아니었길 바란다. 영화 <챔피언스>는 장애인들에겐 자립과 공동체에의 참여가, 운동선수들에겐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우리들에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태도를 걷어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중반, 마르코의 엄마는 “세상은 작은 사람들이 이룬 거대한 성취로 가득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 말은 농구선수로 성공하기에는 키가 작았던 마르코를 놀리듯이 위로하기 위한 대사였지만 마르코보다 프렌즈 팀원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지 않을까. 무엇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코미디 영화로 삶을 녹여낸, 말 그대로 '이름을 걸고' 작업한 '작은 사람들'의 이 작품은 세상을 채운 또 하나의 대단한 성취가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