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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훈 Feb 28. 2019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든 이를 위한 안내서 <그린북>

직진하는 도로 위에서 자꾸만 교차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정확한 발음과 중후한 목소리만으로도 관객들을 매료시키는(잘 모르는 분이 계시다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애런 삼촌'의 목소리를 들어보시길) 마허샬라 알리가 피아노까지 친다면 어떨까? 영화 <그린북>에서 그는 세계적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를 연기한다.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카네기 홀 꼭대기에 사는 권위 있는 음악가인 셜리 박사는 미국 남부 투어를 떠나기 위해 운전사를 고용하는데, 바로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다. 토니는 나이트클럽에서 경호원으로 일하며,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 백인이다.

왕좌에 앉은 흑인 셜리 박사와 낮은 의자에 앉은 백인 토니

  셜리 박사가 면접도 대충 본 토니를 굳이 고용한 이유는 '문제 해결 능력'이었다.(대부분의 경우 '주먹'이 해결했지만) 여전히 호텔도, 식당도, 화장실도 백인과 같은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흑인인 셜리 박사가 떠나는 1960년대의 남부 투어는 누가 봐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돈과 능력, 품위까지 갖춘 그지만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흑인 수리기사들이 입을 댄 컵을 쓰레기통에 넣은 토니가 셜리 박사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부터 앞서는 이들의 동행을 그린 <그린북>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동을 따라 터지며 로드 무비이자 버디 무비의 전형을 보여준다.


  초반부, 투어를 시작하며 식당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의 매력을 비유한다. “음식 맛이 어떻냐?”는 질문에 그저 “짜다(salty).”라고 이야기하는 토니를 향해 셜리 박사는 놀리듯 “음식 평론을 할 생각이 없냐?”라고 묻는다. 이에 토니는 “소금은 사기다. 덜 짜게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게 진짜 요리.”라 말한다. <그린북>이 그렇다. 시종일관 잔잔하게 둘의 대화가 이어지지만, 결코 싱겁지가 않다.

비고 모텐슨의 먹방도 매력이지만 마허샬라 알리의 패션도 좋은 볼거리다.

  자극적이지 않은 <그린북>에 들어간 기분 좋은 조미료를 굳이 찾자면, 토니의 '먹방(먹는 방송)'이다. 50달러를 위해 26개의 핫도그를 먹어 치우는 내기를 시작으로, 햄버거, 미트볼 스파게티, 피자, 피망 치즈 샌드위치 등 끊임없이 먹는다. 이 음식들은 토니의 출신(이탈리아)과 미국(각 지방)을 상징하는데, 단연 돋보인 건 그 유명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다.


  현지에서 맛 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 흥분한 토니는 단걸음에 한 버켓을 사 오는데, 놀랍게도 셜리 박사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이에 토니는 당신들(흑인)은 맨날 이런 프라이드 치킨에 옥수수를 먹지 않느냐고 의아해하며 강권한다. 품위가 중요한 셜리 박사는 포크와 나이프를 찾지만, 이내 맨손으로 받아 들고 즐긴다. 토니를 따라 차창 밖으로 뼈를 신나게 던지는 장면은 셜리 박사에겐 일종의 작은 해방이 아니었을까. 음악과 음식을 가지고도 셜리 박사를 판단하려는 토니의 좁은 인식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일할 땐 100% 일하고, 웃을 땐 100% 웃고, 먹을 땐 100%를 먹으라'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토니에게 한 수 배우는 장면이다.

뒤늦게 알아버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맛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으면, 나는 대체 누구죠?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감히 마허샬라 알리의 ‘인생 배역’이라 확신했다. 경찰관이 약 올리듯 내뱉은 ‘반쪽은 흑인’이라는 표현에 주먹을 휘두른 토니를 향해 셜리 박사는 “난 평생을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당신은 하룻밤도 못 참아?”라며 열을 올린다. 이에 토니는 떠도는 유대인과 다름없는 자신이 더 흑인답다면서 품위 타령만 하는 셜리 박사에 대꾸한다. 흑인에 게이라는 소수자성을 가진 셜리 박사는 폭우에 차에서 내려 울분을 토하고, 이 둘의 삶이 크게 교차한다.

셜리 박사와 토니의 교차가 극에 달해 충돌하는 영화의 후반부

  폭설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길에서 차를 몰아세운 경찰관으로부터 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는 그 언제 들은 크리스마스 인사보다 따뜻했다. 차별과 멸시 혹은 ‘전통’과 ‘규칙’을 가장한 혐오로 얼룩진 시대상에 한 줄기 빛이었기 때문이다. 혹 많은 이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린북>을 봤다면, <나홀로집에> 시리즈나 <러브액츄얼리>를 능가하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가 끝이 날 때가 다가와도 바뀐 건 그저 토니의 시야와 셜리 박사의 태도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마지막 공연을 과감히 거부하며 식당에 경고한 이들의 결정은 경종을 울렸겠으나 말이다.


어느 때보다 활짝 웃는 셜리 박사와 어느 때보다 경쾌한 건반 소리. 엔딩으로 가는 훌륭한 무대.

  토니와 셜리 박사가 서로에게 배움을 주었듯 <그린북>은 관객에게 분명한 울림을 준다. 대단한 성취가 없을지라도, 아무렴 어떤가. 떠버리 토니의 떠벌거림과 먹부림을, 셜리 박사의 품위 있는 발음과 피아노 선율을 그리고 훌륭한 각본으로 이 둘의 ‘밀고 당기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신선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영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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