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주현 Apr 28. 2024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방법

끝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지금'에 충실하도록 만든다

한 달째 아침에 일어나자마 한 시간 정도 운동하는 루틴을 계속하고 있다. 컨디션이나 일정 때문에 빠트린 날도 있지만, 한 손으로 꼽을 만큼 꾸준히 했다. 기특하면서도 의아하다. 


운동을 시작한 초기엔, 그 지속은 호르몬 힘 덕이었을 것이다. 호르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기간은 대개 일주일을 넘지 않고, 그 시기가 지나면 곧장 움직이기 싫은 나락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그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생각하지 않은' 덕이다. 


'생각하지 않기'란 소위 김연아 태도로 알려져 있다. 김연아 일상을 따라다니는 다큐 한 장면에서 훈련 시작 전 스트레칭하며 몸 푸는 김연아에게 피디가 물었다. "운동할 때 무슨 생각해요?" 살짝 퉁명스럽게 들릴 수도 있는 목소리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생각은 무슨.. 생각을 해요....그냥 하는 거지." 


이 짤은 은근 자기계발러 사이에서 유명하다. 나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에 이 얘기를 언급했다. 생각이 많으면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 해 보지 않은 일의 전망을 그리는 종류 따위의 생각은 대개 부정적으로 흐르기 쉬워서 자기 앞에 닥친, 해야 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회피하고 미루게 만든다. 김연아를 보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생각 없이 그냥 한다고 하지 않는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게 익숙한 방법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이 방법이 작동했다. 의식적으로 이 방법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일어나자마자 절운동을 워밍업으로 시작해서 다리 근력 운동 그리고 요가 시작 동작으로 마무리까지 로보트처럼 움직였다. 이 운동을 하고, 저걸 한 다음, 저것까지  하는 루틴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절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시작하니, 나머지는 저절로 됐다. 김연아의 '그냥 하기'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어제 오늘 쯤 되자, 머릿속 시뮬레이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절운동하는 동안의 지루함, 근력 운동하는 동안의 그 힘쓰기, 요가 동작의 힘겨움이 마구 떠올랐다.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침대에서 밍기적밍기적 거리면서 오늘은 하지 말까? 쉴까? 답 없는 질문을 퍼 부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득 송승헌이 떠올랐다. 지난 <나 혼자 산다>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나서 윌슨 옆에 털썩 앉아서 내뱉은 자문자답이다. "윌슨, 이 힘든 운동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끝이 있을까? 그냥 죽을 때까지 해야겠지?!" 나도 속삭였다. '그래, 이 운동은 끝이 있는 게 아니야. 죽을 때까지 그냥 해야 되는 거야.' 


끝이 없는 무한대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내게는 오늘 하루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완성을 기다리면, 오늘/지금은 끝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끝이 없다면, 무한대라면, 인간에게는 오늘/지금이 목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피해도 어차피 내일, 모레 또 해야 하는 끝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 오늘에서 도망가려는 마음의 뒷덜미를 잡아챈 것이다. 


아직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는 일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사는 일에는 한 발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





4년 전 오늘, 2020년 4월 28일 기록을 읽으며 마음을 다시 새롭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 탓은 지옥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