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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칠이 일상꽁트 Dec 12. 2016

기분 좋은 산책 _ 어린이대공원~아차산 둘레길

소소한 행복 한 자락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하다. 오랜만에 채비를 하고 산책을 나섰다.

회사에서 2시간 거리나 되는 이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인 나만의 힐링 코스. 어린이대공원을 자나 아차산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영화사(절)에 들러 내려오는 길이다.

집에서 출발해 느린 걸음으로 꼭 두 시간 거리인 이 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뚜렷한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고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에 내 기분까지 절로 행복해지곤 한다.

커피 한잔을 사들고 여유롭게 어린이대공원 정문으로 들어선다.


유니세프 캠페인으로 옛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놀이판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그려져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콩콩 사방치기를 해보고, 아빠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시범을 보이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신기한 놀이를 만난 것 처럼 선 사이를 폴짝폴짝 뛰고 있다. 그렇게 유행한다는 터닝메카드도 아니고 인형도 아닌 그저 선 몇 줄에 모두의 마음이 둥실 거리며 즐거워진다.


늘 이벤트가 많은 어린이대공은 이번 겨울엔 '아빠와 함께하는 추억의 놀이'를 준비했나 보다. 어릴 적 문방구 앞에서 보던 오락기계와 줄팽이, 경주마 장난감 등이 가득하다. 500원을 내고 참여하는 이 놀이에 아이들보다 아빠들이 더 신이나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한편에 아이들의 연예인 '타요버스 타기 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는 걸 보니 아이들이 그냥 지나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빨간색과 노란색 버스는 루돌프 사슴뿔과 빨간 코도 달고 있어 덩치에 맞지 않게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사람 많은 곳을 벗어나 낙엽 풀장을 걸어본다.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좋다. 이미 떨어져 버린 나뭇잎이 가을이 끝났음을 실감하게 한다.


원래 있던 작은 편의점이 사라지고 처음 보는 '친환경 편의점'이란 것이 생겼다. 보리국수, 현미국수, 쌀국수 등의 간식거리 몇 가지가 눈에 띄고, 재활용 집기를 사용한다. 쌈지에서 운영하는 편의점이라고 하는데 '농부로부터'라는 말이 정겹다.

어린이대공원을 지나 아차산 입구로 간다.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풍경이 달라져있다. 항상 보던 터줏대감 빵집이 부동산이 되어버렸고. 오고 가고 거의 매번 들르던 칼국수집도 없어졌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간식거리를 살 수 있게 하고, 시원 칼칼한 칼국수와 부드러운 편육이 일품이었는데 아쉽다.

산으로 가는 길 어린이집 담벼락에 24절기를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산에 도착하기 전 반드시 올라야 하는 오르막길이 참 지루했는데 생각지 못한 그림 덕분에 이 길도 오늘따라 즐겁게 느껴진다.

산으로 들어선다. 자율적으로 책을 뽑아 읽을 수 있는 '숲 속 도서관'을지나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나뭇길로 걷기 좋게 정비된 둘레길은 걸을 때마다 통통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가만 귀 기울이다가 길 중간의 벤치에 앉아 산 냄새를 맡아본다. 소나무 향이 좋다. 나무마다 향이 다르다는 것이 새삼 새롭다.


돌아오는 길 마지막 코스로 영화사에 들러 초를 켜고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뵙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간절해지는 엄마의 건강과 식구들의 안녕, 얼굴이 떠오르는 내 주위 사람들 마음이 평화롭길 빌어본다.

바람 없는 날씨 덕분에 꺼진 초 없이 밝게 살아있는 초를 보며, 아이 손을 잡고, 늙은 부모의 손을 잡고, 연인과 함께, 또는 나처럼 혼자서 조용히 절을 찾는 이들을 보며 참  많은 간절함이 이곳에 있음을 느낀다.


참 좋다.

생각을 덜고 마음을 비운다.

두 시간 남짓 온전히 나만의 세계에 머물다 나온다. 기분전환을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내게 익숙하고 친숙한 이곳에서 나만의 기분전환을 해본다.

거창하진 않지만 행복한 이곳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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