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만에 가는 집이었다.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했지만 어쨌든, 만나는 건 지난해 추석 이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동시에, 불안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싸우지 않아야 할 텐데..'
엄마와 붙어있으면 끝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겉으로는 화해하고 잘 마무리한 것처럼 보여도 안으로는 여전히 꽁했고 상처 받기 일쑤였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했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는 나도 뾰족했고, 그런 나를 엄마는 못마땅해했다. 나와 말씨름을 하다가 당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는 엄마한테 서운해서 그 날로 도망치듯 아이와 짐을 싸서 나온 날도 있었고, 엄마가 육아를 도와주겠다고 왔다가 내내 싸우기만 해서 애초에 계획한 날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가는 친정이고, 코로나 때문에 매번 무산된 만남이었기에 가족의 품이 더 간절하기도 했다.
딱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엄마는 짧은 시간 동안 딸과 사위, 손주들이 편히 쉬었다 가길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부엌과 거실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거실에서 손주들과 놀아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부엌에서 뭔가를 내오느라 바빴다.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과 간식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기우뚱 거리는 엄마의 걸음걸이와 굽은 어깨에 애잔함과 미안함을 느꼈다. 엄마도 혼자 세 아이를 키우느라 얼굴이 상한 딸이 안타까웠는지 잔소리를 반찬 삼아 소고기부터 장어 볶음까지 몸에 좋다는 음식 가득 상을 차렸다. 소소한 티격 거림은 있었지만 순조로웠다. 평범하고 따듯한 모녀 사이, 딱 좋았다.
문제는 아이의 피부였다. 엄마는 아이의 피부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한 이후 처음 대면하는 것이었는데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첫째 날에는 아이 피부가 왜 이러는 거냐며 소곤거리듯 물었다. 둘째 날에는 수시로 아이 얼굴과 몸을 쓸어보며 뭐가 문제인지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를 물었다. 뭘 잘 못 먹인 건 아닌지, 집에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은 아닌지, 로션을 잘 챙겨 발라주지 않아서는 아닌지, 세제를 이상한 거 쓰는 건 아닌지 캐물었다. 그날 밤에는 고양이를 다른 사람 주라고,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수시로 로션을 바르라고 나를 들들 볶았다. 셋 째날에는 밥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와 먹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을 인정한다는 나를 싸잡아 '네가 그러니까 애 피부가 이 모양이다.'는 말로 비수를 꽂았다.
씨근덕거리며 "아, 뭐가 나 때문이야!"라고 쏘아붙였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육아 스타일을 꼬집었고 나는 엄마가 말하는 거 나도 다 알아봤다며 맞섰다. 수 분의 언쟁 끝에 엄마는 '걱정돼서 하는 말에도 발끈하는 지랄 맞은 년'이라며 대화의 종료를 선언했고, 나 역시 '엄마가 나보다 더 억장이 무너져?'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다행히 아이는 동생들과 뛰어노느라 모르는 눈치였다. 아이마저 엄마와 나의 말다툼에 주눅 들어 있었다면 나는 분노와 죄책감에 눈물을 터뜨렸으리라. 돌을 씹는 것처럼 껄끄러운 식사를 겨우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쌌다. 오늘 헤어지면 일 년 후에나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인사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 빨래를 걷어주며 무언의 화해를 청했고, 나는 차에서 애들 먹일 물 좀 챙겨달라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차에 오르는 나에게 엄마는 당부했다.
"꼭 병원 가 봐라. 그리고 너도 밥 잘 챙겨 먹어. 삐쩍 말라서 쓰겄냐."
엄마와 헤어져서 집에 오는 길,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흩어졌다. 슬픈 건지, 속상한 건지, 미안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엄마와 나의 걱정의 뿌리는 같은데 왜 이렇게 표현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저 "아기 피부 때문에 우리 딸 걱정 많겠네."라는 위로와 공감이면 충분한데.
"그러게, 내가 더 신경 써야겠어."라는 두루뭉술한 대화여도 괜찮은데.
<"우아한 거짓말" 중에서 화영 / 출처 : 네이버영화>
엄마는 팥쥐 엄마여도 콩쥐 편이야!
"우아한 거짓말(2014, 드라마)"이라는 영화에서 화연의 엄마가 화연에게 하는 말이다. 친구들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만지',그리고 만지따돌림의 중심에 있던 '화연'. 만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화연에게 네가 괴롭혔냐며 묻는 '화연의 엄마'. 영화 속에서 중요한 장면도 아니고 핵심 스토리도 아니건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실이 어찌 되었든 화연은 '네가 그랬다고 해도 엄마는 네 편이다'라는 말이 듣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 내가 엄마의 타박이나 팩폭보다 '충분히 애쓰고 있다'는 응원과 '다 괜찮아질 거다'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