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어린이집 갈 수 있지? 엄마가 노란 차 타는 데까지 데려다 주기는 할 거야. 윤이 없어도 괜찮지?"
첫째 아이가 병원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둘째, 셋째 아이도 모두 데리고 다녔다. 병원일지언정 엄마랑 같이 있겠다고 떼쓰기도 하고, 나도 공평하게(?) 내 곁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아프지 않은 아이의 기호까지 맞춰가며 병원에 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천방지축 개구쟁이 아이 셋과의 접수, 대기, 진료, 수납, 약국. 어느 하나 수월하게 넘어가는 코스가 없었다.
피부를 잘 본다는 소아과, 피부과, 한의원을 전전하다가 이번에는 큰 병원에 가기로 한 참이었다. 집에서 30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하는 병원이기도 하고 코로나 선별 진료소이기도 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다시 격상된 요즘 많은 사람이 붐비는 큰 병원에 아이 셋을 다 데리고 가자니 부담스러웠다. 막내야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으니 어쩔 수 없으니 둘째라도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충분히 상황 설명을 했는데도 둘째 얼굴을 보니 어쩐지 서운한 표정이다.
"나만 빼놓고 다 병원 가는 거야?"
"'너만 빼놓고'가 아니라 윤이는 진료받아야 하고 막둥이는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으니 같이 가는 거야."
"힝. 나도 엄마가 필요한데.."
잠깐 울상이더니 그래도 이내 "나 어린이집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아!" 했다. 다행이면서도 고마웠다. 둘째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자기만 '빼놓고' 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에게 다짐받듯 물었고, 오늘 아침에는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혼자 어린이집 차량에 올라탔다.
한 명이 빠졌을 뿐인데 사뭇 여유로웠다. 막내를 안고 첫째 손을 잡고 걷는 것도, 대기가 길어져 병원 구경(?)을 하는 것도 무난하고 편했다. 막내가 잠들자 오롯이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한 첫째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심지어 "이 병원 정말 좋다!"라고까지 할 정도로. 나도 오랜만에 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차분히 기다려줄 수 있었고, 말 마치기 전에 다른 아이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와 제대로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뭔가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데이트 아닌 데이트였달까.
와중에 둘째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엄마와의 시간이 둘째도 필요할 텐데. 진료 때문이긴 하지만 혼자만 떼어놓은 것 같아 미안하고,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이 애잔했다. 자꾸 보고 싶고 눈 앞에 어른거렸다. 모진 말로 혼냈던 기억까지 떠올라 목구멍이 뻐근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 있다."
지금껏 나는 늘 그렇게 믿었다. 나와 남동생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른 부모님 덕분이었다. 아빠는 완전 내 편, 엄마는 완전 동생 편이었다. 아빠는 번번이 남동생을 주눅 들게 했고, 엄마는 그런 동생 기 살리느라 바빴다. 아빠에게는 나와 동생 중에 누가 더 아픈 손가락인지 확실치 않지만, 엄마에게는 분명했다. 부모를 한 명씩 차지했으니 공평해 보일지 모르지만, 물리적, 심적으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나는 동생에게 기운 엄마의 마음이 못내 서운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늘 다짐했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공평하게 사랑을 나누려 애썼다. 하지만 첫째 아이의 피부 상태가 악화되면서 균형은 깨졌다. 아이의 피부와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돌보느라 나 스스로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고 있었다. 막내는 아직 두 돌도 채우지 못한 아기라서 내 곁을 많이 내어주어야 했다. 특별히 크게 아픈 곳 없고 혼자 할 수 있는 게 제법 되는 둘째 아이의 말은 허공에 흩어질 때가 많았다.
사랑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환히 웃으며 어린이집 차에서 내려 "엄마,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둘째 아이 얼굴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