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작가 Oct 07. 2021

맥시멀리스트라니, 오해입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미니멀라이프다. 짐을 줄이고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가지각색의 방법이나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집의 모습이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리고 SNS에서 ‘좋아요’를 받는다. ‘미니멀라이프’에 관한 책들이 경쟁적으로 출판된다. 이제는 나눠 먹을 파이가 크지 않은 시장이 된 것도 같은데 미니멀라이프를 예찬하는 실용서와 에세이가 여전히 넘쳐난다. 오늘은 새로운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 소개와 작가 인터뷰가 네이버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은 국경도 없어서 일본, 미국 할 것 없이 공유되고 퍼진다. 넷플릭스에도 ‘미니멀라이프’를 키워드로 하는 다큐나 시리즈를 쉽게 찾을 수 있고 블로그만 보더라도 ‘미니멀라이프 챌린지’를 골자로 하는 모임이 넘쳐난다.


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라는 뜻의 ‘미니멀(minimal)’과 ‘주의’라는 뜻의 ‘이즘(ism)을 결합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출처 : 두산지식백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간 예술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장된 이 개념이 라이프스타일과 접목되어 우리나라에 널리 퍼지게 된 때는 동일본 대지진(2011) 이후이다. 예견치 못한 대자연의 재앙 앞에 삶이 무참히 스러진 후 생겨난 무소유가 근간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가지고 사는 삶. 그런 삶을 살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과거에 좋아했던 것 말고, 미래에 하고 싶은 것도 말고,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내가 원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미니멀라이프 등장에 열광했다. 현대인들은 바쁘니까. 무엇에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지 알아채기조차 어려울 만큼 정신없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소위 트렌드라는 것을 좇기에도 숨 가쁘다. 그러니 도리어 내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금세 잊는다. 왜 이걸 하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다. 한참 바쁘게 종종거리다가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살지?’하는 현타가 괜히 오는 게 아니다. 미니멀라이프는 이 부분을 지적하고 일깨운다. 그래서 너 지금 그게 왜 필요하냐고. 그걸 왜 갖고 싶냐고. 진짜 원하는 게 맞냐고.


요컨대 미니멀라이프는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라이프스타일이다. 문제는 이 스타일조차 내 결정이 아닐 때 생긴다. 넓고 깨끗한 집에 두 가지 색으로 통일된 인테리어와 가구와 소품들, 정갈하고 정돈된 공간을 손가락 너머로 들여다보고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이내 자신의 공간을 돌아보며 한숨짓고 불만족스러워한다. 남들은 저렇게 깨끗하고 좋은 집에 사는데 나는 구질구질하고 정신없이 물건에 치여 사는 것 같아 답답해진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텐데’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는 몇 번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했다가 탓한다. 물건을 깔끔하게 수납할 수 없는 집을, 미니멀라이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가족을, 새롭게 인테리어 할 수 없게 만드는 얇은 지갑 사정을, 물건을 대차게 버려낼 강단이 없는 자신을.


때로는 마구잡이로 물건을 비워내고는 이내 불편해져 야금야금 새로운 물건을 구입한다. 텅 빈 거실을 만들겠다며 소파를 버려놓고 허리가 아프다며 다시 사고, 필요 없다고 가습기, 제습기 다 버려놓고 신제품 핫딜 뜨면 못 이기는 척 새로 산다. 그러면서 후회한다. '내가 미쳤다고 다 버리고선 또 사나, 돈지랄이 따로 없네.'라고. 마음 굳게 다짐하기도 한다. '나는 미니멀라이프와는 안 맞아. 다시 도전하나 봐라.'하고.


이쯤 되면 주도권을 뺏긴 거나 다름없다. 물건을 버리고 남기는 기준뿐만 아니라 내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에게 있는 것이다. 미니멀하게 살고 있다고 보이는 남들에게 기준을 맞추고 그들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과 환경을 한심해한다. 더 이상 미니멀라이프 나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패배감과 실망감만 남는다. 그러면서 자조한다. ‘나는 맥시멀리스트니까.’라고.


단언하건대 맥시멀리스트는 많은 물건을 이고 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의미도, 질서도 없는 물건들을 짐짝처럼 쌓아두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사는 건 그냥 짐 많고 정리 안 된 집이지, 맥시멀라이프가 아니다. 쓰레기도 못 버리고 온갖 물건을 모으는 건 수집벽이 있는 거지, ‘맥시멀라이프’라고 이름 붙일 ‘스타일’이 아니다. 화이트 인테리어라며 다양한 물건을 색깔 맞추어 즐비하게 구비해놓는 사람에게 '미니멀리스트'라고 하지 않듯이, 취향 없이 물건만 늘어지게 많은 사람은 '맥시멀리스트'가 아니다.


내가 맥시멀리스트라서 편드는 게 아니다. 맥시멀리즘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 형태의 예술 경향이다. 간결하고 단순한 미니멀리즘의 반대 개념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라이프 스타일이 결합되면 무질서하고 개념 없이 쌓인, 많고 많은 짐과 소비를 떠올린다. 너무하다. 많은 물건에도 질서가 있다면 충분히 멋진 하나의 스타일인데 취향 없이 늘어진 물건들에 둘러싸인 삶이라고 쉽게 오해한다.


그리고 엄연히 말하자면 나는 맥시멀리스트도 아니다. 나는 맥시멀라이프와 미니멀라이프의 중간의 삶을 산다.  ‘미디움라이프’라고 이름 짓고 스스로를 ‘미디우미스트(midiumist)’라고 부른다. 맥시멀에서 미니멀로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정착된 ‘미디움’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의 지점이랄까.


미니멀, 미디움, 맥시멀. 말장난이라고 욕하지 마시라. 치열한 고민과 선택, 확고한 취향과 결정이 빚은  라이프스타일이다.


미디움라이프라니, 그거 그냥 미니멀라이프 도전에 실패한 맥시멀인 거 아니냐고? 맞다. 동시에 아니다. 나도 한 때는 미니멀로 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남편과 아이들을 달달 볶고 ‘이 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며 울부짖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미디움’의 지점에 안착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니멀도, 맥시멀도 아닌 뜻뜨미지근한 미디움라이프이지만 나에게는 꼭 맞는 스타일이다. 풍족하지만 제한적이며, 낡았으나 유용하다. 궁상맞거나 촌스럽지 않다. 질서 있고 분명하다.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백 번 양보해도 말장난 같다고?그래도 백 한 번 양보해 자신의 집을 짚어봐 달라. 어느 쪽인가? 그 집에서의 생활은 당신에게 모자람이나 불편함 없이 꼭 맞는가? 당신이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한 스타일인가?


당신은 어떤 삶을, 아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엄마, 나는 왜 이런 사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