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 O2 & H2O>
양혜규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미술사학자 우정아의 책 <남겨진 자들을 위한 미술>에서였다. 인천의 한 폐가에서 마련되어 두 달간 진행되었던 그의 2006년작 <사동 30번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작품세계와 시각 언어에 매료되었다. 그러한 빠져듦에는 아쉬움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사동 30번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성이 존재하는 작품을 현장에서 보는 것과 언어로 지면 위에 번역된 것을 보는 일은 분명 다를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9월 29일부터 전시 중인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 – O2 & H2O>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에 꼭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미술관을 찾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오면 서울 박스 중앙에 부유하는 거대한 어떤 구조물이 보인다.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이다. 원통 속의 원통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벽면들은 가느다란 베니션 블라인드의 창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빈틈이 숭숭 뚫려있고 내부가 불투명하게 투과해 보인다. 겉 원통을 이루는 블라인드는 검은색으로, 안쪽 원통을 이루는 블라인드는 짙은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데, 안쪽 원통은 천천히 회전한다. 이러한 움직임과 구성에 따라 작품의 형태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관객의 위치에서 따라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전시물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서 천장을 바라보면 서울 박스 외부의 햇빛과 작품의 광원, 파란색과 검은색 블라인드의 간섭 효과로 관객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몽롱한 몰입의 상태를 체험하게 된다.
5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왼편으로 <래커 회화>들이 벽면에 걸려 있고, 벽면을 따라서 <크로마키 벽체 통로>가 띄엄띄엄 서 있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둥둥 떠 있거나 바퀴가 달려서 유동적인 데 반해 이 두 작품군은 벽과 땅에 붙어 있고, <래커 회화>의 경우 제작 과정 또한 정적이다. 이는 공업용 래커를 바른 캔버스를 야외에 늘어놓고 말리면서 거기에 부착되고 쌓이는 자연의 것들(곤충, 낙엽, 씨앗), 작업의 부산물(커터칼 조각)이나 삶의 부산물(양파망) 등을 전시한 것이다.
<크로마키 벽체 통로>의 경우 제목 그대로 통로의 내부 면을 크로마키(Chroma Key, 녹색, 푸른색)로 칠한 벽의 형태를 가진 통로이다. 세 요소 모두가 중요한데, 크로마키는 특수효과를 입힐 때 쓰는 바탕색으로 그것에서 무엇을 상상해내서 구현할지는 관객의 몫이 된다(따라서 벽체 뒤쪽의 실제 전시공간은 그러한 벽 너머/경계적 상상력의 공간이 되겠다). 그리고 벽의 모양을 띤 통로는, 이것이 5전시장으로 들어오는 세 입구의 규격을 그대로 본떠 만든 것으로, 전시장의 벽면이 그저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그 속에 비상계단과 파이프, 공조 장치 등 각종 기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크로마키 벽체 통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통로가 되어 관객들을 5전시장 내부로 안내한다.
마찬가지로 벽에 붙어 있는 작품이자, 벽 자체가 작품의 일부이기도 한 <구각형 문열림>이 오른쪽 벽면 전체를 넘어 전면 벽의 일부까지 차지한다. 겹쳐진 구각형의 각 꼭짓점에 익숙한 은색, 황동색 문손잡이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제각기 다른 문손잡이들이 별자리의 모습으로 열리지 않는 문(벽)에 견고히 박혀 있는 모습은 어떤 답답함과 동시에 어떤 희망(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을 불러일으킨다.
이어서 전시장의 바닥에는 네 개의 기묘한 형태의 <소리 나는 가물>들과 두 개의 <소리 나는 접이식 건조대 – 마장마술>이 놓여 있다. <소리 나는 가물>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가정에서 익숙한 물건들인 다리미, 드라이기, 컴퓨터 마우스, 그리고 냄비를 닮았지만, 그것들이 뒤엉켜 거미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가위나 도깨비, 돌하르방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작품들의 겉면은 반짝이는 방울들과 인조 짚풀로 뒤덮여 있으며 회전이나 이동이 가능하도록 바퀴와 손잡이가 달려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에서는 이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것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찰랑대는 방울 소리가 마치 귀신을 불러내는 제의를 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시장의 중심부에는 순백색의 블라인드를 중첩하여 만든 정육면체를 공중에 띄운 두 점의 <솔 르윗 뒤집기> 작품이 걸려 있다. 이들은 미니멀리즘 작가 솔 르윗의 원작 <오픈 모듈러 큐브>와 <스트럭쳐>를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원래의 뼈대만 숭숭한 구조를 블라인드를 활용하여 불투명한 입방체로 만든 후 뒤집은 것이다. 작품의 안쪽을 골똘히 들여다보아도, 원작의 균등하게 투명한 외면과 내면과는 다르게 여기서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불투명성, 불균질함, 포착 불가능성과 동시에 비어 있음은 양혜규의 작품들에 반복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맞은편 벽에는 거대한 벽지 작품, <디엠지 비행>이 전면을 차지한다. 방울이 매달린 철조망, 로봇 벌이 철근/세균/리본 등을 들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 폭발, 국경 건너편을 바라보는 망원경, 풀잎과 물방울 하나. 너무나 다양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이미지들이 혼재된 이 벽지는 다양한 해석을 열어둔 채 뒤쪽의 전시장들을 앞쪽의 전시장들과 구분하고 중재한다.
벽지 속 벌이 향하는 방향인 오른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은신처 같은 방이 있다. 여기는 전시 안의 전시 형태로 꾸며진 <목우 공방 – 108 나무 숟가락>이 있는 곳이다. 작가의 모친의 지인인 김우희 목수가 창원에서 운영하는 공방에서 만든 숟가락들로 이루어진 전시인데, 형태가 하나같이 특이하고 어떤 것은 심지어 구멍까지 뚫려있어 제대로 기능을 할까도 의심이 되는 물건들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이웃들과 자연, 공동체, 수작업과 무쓸모와 같은 외면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들을 되짚어보고, 이 은밀한 공간에서 보듬는다.
5전시장의 마지막 방은 층고가 매우 높은데, 그 천장에는 촘촘히 방울이 달린 <소리 나는 동아줄>이 매달려있다. 이를 따라 시선을 올려다보면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친 듯한 세 개의 짚풀 작품, <중간 유형>이 있다. 중간 유형이라 하였으니 무엇에서 무엇으로 되는 중인 중간 단계, 즉 이무기거나, 사람이거나 할 테다. 지상에서 하늘로 가는 동아줄, 그를 따라 하늘로 도망치면 용이 된다는 것일까. 사람 또한 그처럼 도망치는 중인 걸까. <중간 유형>은 인간의 탈 형태로 벽에도 걸려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인조 짚풀의 매끈함이 느껴진다. 실제 짚풀이 아닌 가짜를 쓴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또한 비어 있음을, 함정과도 같은 그 감각을 일깨우려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보며 허무함을 느껴야 하는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느껴야 하는가.
전시장을 나오면 넓은 복도 위로 <오행 비행>의 다섯 개 현수막이 풍선에 매달려 공중에 떠 있고 그 사이로 <진정성 있는 복제>의 스피커 다발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 수, 목, 금, 토 오행의 이름이 그려진 현수막에는 <디엠지 비행>에서처럼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미지가 혼재한다. 그 사이로 작가 양혜규의 목소리(이 또한 허구다. 딥러닝을 통해 양혜규의 목소리를 학습한 기계가 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므로)가 흘러나온다. 속삭이는 목소리이므로 목청이 없고, 알맹이가 없다. 이미 쉬어있으므로 이 이상 쉬지도 않는다.
그의 속삭임에는 내가 <사동 30번지>를 처음 접하고 그것이 이제는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을 위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시는 이렇게 끝난다. 붙잡히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라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얽어매지 말라는, 사라지고 남겨지는 것들을 그대로 그렇게 보라는 현실과 허상 모두의 목소리로.
“난 소리를 낼 줄 알아. 그런데 내가 다 할 줄 아는 건 아니야. 난 누구냐고? 내가 (왜) 이렇게 속삭이냐고? (...) 속삭일 수밖에 없어.”
* 본 전시 관람은 지난 10월 초, 방역 수칙 준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